하버드 아트 뮤지엄 웹사이트

예쁘게 포장한 정보가 아니라 정확하고 명료한 정보가 좋은 정보이다.

당연한 말 같은데 웹사이트 제작에서 좀처럼 지키기 어려운 기준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아마도 포장한 정보를 제공해서 자사 서비스(결국은 광고매출)의 규모를 늘리고자 하는 네이버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정보제공 웹사이트, 예를 들면 서울시의 함께서울지도에는 온갖 정보가 계층과 카테고리를 명확하게 구분하지도 않고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다.(포장이 예쁘지도 않다)

Harvard Art Museum 의 웹사이트는 공들여 만든 흰색의 건축물처럼 아름답다. 절제된 정보, 정제된 디자인 컨셉, 타이포와 폰트라는 텍스트의 기본에 충실한 컨셉까지…오랜만에 만난 정말 아름다운 웹사이트이다.

이런 문화 콘텐트 웹사이트에서 내가 즐겨보는 부분은 기관의 정보와 관련된 영역이다. Visit 섹션의 정보는 친절하고 충실하다. 심지어 Footer에서, 이제는 한물간 정보라고 여겼던 현재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 디자인까지도 ‘아, 이건 방문객을 위한 일종의 배려구나’라고 생각될 정도.

서울기록원 TF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오로지 행정의 힘만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소스는 충분한데 추진의 구심력이 없어서 건축이든, 콘텐트든, 운영이든 문제가 터져나올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발제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스프레드시트에 촘촘하게 이슈와 스케줄, 태스크를 채워넣고 하나씩 지우거나 수정해야 할 때인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 와중에 온-오프라인에서 사용자 경험의 일관성이니 따위를 말했던 나도 참 오바였구나, 라는 생각.

낮술

전 캡틴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일 년 만이었다. 아니 ‘전’을 빼야한다. 유일하게 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이 일, 이 업에 대해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와 나는 한동안 어색하고 데면데면했다. 서로 찾지 않았고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말이 사이에서 떠도는 느낌이었다.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누구의 말처럼 그에게 동의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그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료관의 일을 중추에서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를 찾아간 이유는 여기에서 일을 그만두는 마당에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고, 내가 언제 도움을 받을지 모르니 드는 보험’ 이 아니었고 순전한 우정과 의리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꼭 직접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거기엔 돌아올 보상이나 기대 따위는 없었다.
학위 논문을 막 끝내고 쉬던 2007년 말의 늦은 겨울이었다. 그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던 식당이며 그 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메뉴며 다 기억이 났다, 선명하게.
사직원이야 행정의 일부일 뿐, 중요한 것은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가 내게, 지금은 내가 그에게 할 말을 하는 것.
캡틴이다. 상사나 선배, 선생보다는 캡틴이 가장 적절했다. 지금도 그렇냐고 물어보면…그렇다. 업무 지시는 상사에게 받을 수 있지만 캡틴과는 방향과 조타를 논의하고 결정한다.
첫 직장에서 ‘캡틴’을 만나긴 어렵다는데, 난 운이 좋았다. 그는 큰 그림과 더 먼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사소한 일들에 크게 마음 쓰지 말 것, 다른 무엇보다 아카이브에, 오로지 그것에 집중할 것을 요청했고 당부했다. 그는 자잘한 갈등에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다만 결정했다. 내가 가져간 허술한 사업계획서에 유일하게 빨간줄을 치며 고쳐주었고 나는 그에게 일을 배웠다.
매사에 나는 ‘그라면 어떻게 결정했을까’ 를 생각했다. 그에게는 ‘시시콜콜악마’가 없었고, 대신 큰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줬다.
경험상 대부분의 일이 그랬듯 가장 어려운 일은 정면에서 보는 게 가장 빠르고 쉬운 해결방법이다.
오랜만에 아카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긴장 속에서 했는데 마음은 더 없이 편안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관점이 다르고 세부의 사안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랐다. 자칫 또 논쟁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고 싶었던가.
서로에게 서운했던, 그래서 오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했다. 삶이 그런거니까. 이문동 허름한 동네 통닭집의 김빠진 맥주와 맛없는 통닭은 맛있었다. 낮술 조오타.

늦포도

제 자신에 대해 간단히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늦포도를 따는, 즉 첫 서리가 내린 후 포도가 가을의 향내를 그윽하게 내뿜을 때 포도송이를 수확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최초의 주목할 만한 책을 쓴 것은 47세와 57세 사이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창조의 정점이 지나가 버린 나이입니다. 이것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이루어진 10년 간입니다.  – 아놀드 하우저, <예술사의 철학> 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서 2008년 1월 23일에 일을 시작했고, 2016년 2월 14일부로 사직원을 제출했다.

사직원 사유란에 무얼 채워야 하나 고민했다. 선배는 ‘일신상의 이유’라고 적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많은 고민을 했고, 이직을 위한 결정과 절차는 갑작스러웠는데 사직은 의외로 싱거웠고 행정적 절차는 무심했다. 몇 사람이 “어디로 가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고 그들로부터 소소한 이별의 선물까지 받았는데 정작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운이 좋게도 대학원 졸업식도 하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운이 나쁘게도 학위 논문을 마치고도 전혀 쉬질 못했다. 꽈악 눌러 채운 8년의 첫 직장 생활이 끝났고 2월에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다.

2015 OPEN ARCHIVES 작업일지

기획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여 출판하면 기획의 본질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마스다 무네아키, 라이프 스타일을 팔다: 다이칸야마 프로젝트, p. 18

오픈 아카이브 사업을 준비하면서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과정’이다. 결과로서의 아카이브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과정의 고민과 시행착오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 또한 분명 누군가에게 1cm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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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로서의 아카이브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습관을 상실했고, 특히 학생들은 어떤 책이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즐거움을 얻는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비관론자들은 말한다. 나도 다른 저작자들처럼 이런 비관론자들의 말이 옳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하략)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제15판에 붙인 서문, p. 14(1989년 3월)

하지만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을 읽는 일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

김홍민,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p. 18

책 조차도 사정이 이러하니 ‘도구로서의 아카이브’ 가 재미있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Snowfall 대신 GIF

문학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행동과 글쓰기가 엄격하게 교대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보다 현재 활동 중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기에 훨씬 더 적합한, 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 즉 전단지, 팸플릿, 신문 기사와 플래카드 등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처럼 기민한 언어만이 순간순간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온갖 의견이 사회적 삶이라는 거대한 장치에 대해 갖는 관계는 기름과 기계의 관계와 동일하다. 아마 터빈 위에 서서 위에다 기계유를 쏟아 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조금 쳐주는 것이 다일 텐데, 그러자면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주유소’, pp. 13 – 14

콘텐트는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디바이스의 기술적 발전과 함께 간다. 사람들은(우리는) 더 이상 교조와 설명, 명분을 장착한(!) 지루한 동영상을 보지 않는다. 그것을 대체할 콘텐트는 너무도 많다. 당장 스미소니언의 저 발랄한 GIF 콘텐트를 보라. 이것은 (한국의)아카이브가 기존의 콘텐트 비즈니스 모델을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수천만원(혹은 수억) 단위 예산, 지루하고 긴 사업계획서(와 RFP), 몇 개월의 기간, 하나의 큰 결과물…

NYT가 퓰리처에 빛나는 Snowfall을 파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스스로 말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완벽에 가깝게 다듬어 매일 ‘발행’하는 종이신문과는 달리, 디지털 실험은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지속적인 개선 작업 싸이클을 통해 다듬어 나가야 한다. 성능을
측정하고, 결과를 연구하고, 실패한 것은 버리고 성공적인 것들만을 골라 발전시킨다.

보존, 생각의 전환

한 때 GOLD DVD 제품을 보존(안정성, longevity)의 끝판왕이라고 했던 적도 있다. 이미 6-7년 전 일이다. 당시 사료관은 고화질 이미지 TIFF(60MB/1장)를 DVD에 담아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그 당시에도 DVD 산업은 사양길의 초입에 있었다는 것. 늘어나는 파일 크기와 데이터 규모를 감당하기에 DVD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아카이벌 디스크'(사실 이게 기술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가 얼마나 큰 용량과 안정적인 보존 기술 기반을 갖고 있는지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닌 듯하다. 정작 중요한 지점은 아카이브 보존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기술의 발전속도를 아카이브가 따라가는 일은 벅차고 감당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아카이브가 적용하는 일일텐데 정책은 완고하고 의사결정은 더디다. 이미 한 장의 DVD에 수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작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료관은 10년도 더 된 구술 영상 사료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약900시간의 분량인데 크기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다. 보통 1시간 분량의 6mm 비디오테잎 영상을 mov로 전환하면 30GB 크기이다. 듀얼레이어 DVD나 블루레이 디스크가 수용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규모이다.  당연히 레이드로 묶은 TB 급의 스토리지로 간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결정은 별도의 mpeg-2 규격의 보존용 파일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비스용 mp4 규격의 파일만 물리적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파일은 모두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iframe embed 코드로 웹사이트에 삽입한다. 유튜브가 우리의 거대한 서비스용 아카이브가 되는 셈이다.

반드시 아카이브가 모든 것을 다 물리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까? 그게 아카이브 보존의 유일한 방법일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제 보존은 파일-데이터의 규모, 서비스 정책, 물리적 완결성 등의 측면에서 유연한 선택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포스트는 아카이브 특유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DVD Longevity

창작과 비평

그러면 10년 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10년 전에 한국 출판권력들이 그걸 은폐하려면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었다. 그것을 이슈화할 수 있는 신문이 몇 개 되지 않았고, 또 문학기자들과의 면식을 통해 알음알음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지금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각종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와 카페, 거기에 한번 문제가 터지면 인터넷에 수십 개의 새로운 기사가 경쟁하듯 올라온다. 표절에 시효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언제든 이슈화 될 때마다 현재성을 갖는다

이순원, 한국문단, 표절이 부끄러운 줄 알라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과 창작과 비평(창비)의 ‘찜찜한’ 대응을 문학적으로 해석할 능력은 없다. 그것은 문학계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영화와 음악이 그런 것처럼 그들 자신의 아카이브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오늘 나온 소설과 100년 전의 소설을 문학 아카이브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

창작과 비평은 넓게 보면 민주화운동과도 관련이 있다.
한 때 창비는 출판사의 등록을 취소당했고, 이에 문인들이 반발했던 기록을 사료관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창비를 아꼈고 지금도 그렇다.
창간호부터 도입한 가로쓰기와 한자의 괄호 처리, 사회역사 비평문의 게재, 외국 문학이론의 번역 소개, 문학 뿐 아니라 다양한 인문과학서와 사회과학서 서평 소개 등은 기존의 문예지와 창비를 구별했던 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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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의 사료는 당시 창비가 한국 문학계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1. 창작과 비평사의 등록 취소를 즉각 취소하라
등록번호 526153
+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526153

2.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항의 농성을 마치면서
등록번호 862693
+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862693

아래는 <창작과 비평사의 등록 취소를 즉각 취소하라> 사료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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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2월 9일자로 “창작과 비평사”의 등록을 취소한 당국의 조치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표지, 목차, 머리말, ***란에 부정기 간행물임을 명시한 책자를 정기간행물로 몰아 출판기관을 폐쇄시키는 치졸과 억지와 파렴치함은 삼척동자도 놀랄 지경이다.

(…)

이에 우리는 현정권의 문화탄압이 국민대중의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창발성에 기초라는 참다운 민족문화의 후진화를 넘어 말살을 가져옴으로써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반민주적, 반민족적 작태임을 규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창작과 비평사에 대한 등록취소 조치를 즉각 취소하라!
1. 모든 문화탄압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
1. 언론 기본법을 철폐하라!

1985년 12월 10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학은 아무리 세속화하였다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주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기능을 제일의 기능으로 삼는다.”(경향신문_황현산_표절에 관하여)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작과 비평은 1966년 창간했고 내년은 창간 5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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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 여행가

아내는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앞에 두고도 고민이 많았다. 나야 노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아내는 여행을 좋아해서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는데, 언제부턴가 그 일이 그녀에게 많이 힘들어보이기 시작했다. 2013, Firenze, Italy


나는 프로그래밍을 사랑한다. 또 그 사랑이 순수한 것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은 유보되거나 자연스럽게 폐기된다. (중략) 이래서 정말 좋아하는 일은 취미벽 안 쪽에 완고하게 격리시키고, 직업이 얼씬도 못하도록 경비해야 한다. 이고잉, 직업과 취미

연금술사의 레시피

마음씨 좋은 시골 할아버지처럼 웃고 있지만 그야말로 지독할 정도의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창작을 위해 스스로에게 건 싸움, 그에 수반되는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매일매일의 작업 노트와 <백 년 동안의 고독>의 복잡한 가계도(family tree)를 없애버렸다. 가족들에게조차 작업의 90%를 마친 후에야 등장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심지어 아내에게 보냈던 러브레터를 회수해서 없애버렸을 정도이니.

텍사스 대학의 The Harry Ransom Center가 올 해 4월 타계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기록을 수집했다고 한다. 매뉴스크립트, 노트, 사진 앨범, 편지, 두 대의 Smith Corona 타자기와 다섯 대의 애플 컴퓨터 등의 유품이 그것이다. Ransom Center는 미국의 손꼽히는 문학 아카이브를 갖추고 있고, 마르케스의 기록은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보르헤스의 기록과 함께 보존된다고 한다.

프라이버시의 보호를 넘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나약함,  미완성-수정 원고 등을 그의 기록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마르케스는 “나의 모든 삶과 생각은 내 책 속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독자들은 작품 이면에 있는 것들까지 궁금해한다. 그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아카이브는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

시약에 대한 레시피를 공개하는 것을 늘 꺼렸지만, 기록을 통해 우리는 마르케스라는 유명한 연금술사의 실험실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 Jose Montelongo, a Latin American literature specialist at the University of Texas

NYT – Souvenirs of a Literary Alchemist

한편 마르케스의 기록이 미국으로 간 것에 대해 (당연히)콜롬비아에서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Colombia to Receive Some García Márquez Eff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