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포도

제 자신에 대해 간단히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늦포도를 따는, 즉 첫 서리가 내린 후 포도가 가을의 향내를 그윽하게 내뿜을 때 포도송이를 수확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최초의 주목할 만한 책을 쓴 것은 47세와 57세 사이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창조의 정점이 지나가 버린 나이입니다. 이것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이루어진 10년 간입니다.  – 아놀드 하우저, <예술사의 철학> 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서 2008년 1월 23일에 일을 시작했고, 2016년 2월 14일부로 사직원을 제출했다.

사직원 사유란에 무얼 채워야 하나 고민했다. 선배는 ‘일신상의 이유’라고 적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많은 고민을 했고, 이직을 위한 결정과 절차는 갑작스러웠는데 사직은 의외로 싱거웠고 행정적 절차는 무심했다. 몇 사람이 “어디로 가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고 그들로부터 소소한 이별의 선물까지 받았는데 정작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운이 좋게도 대학원 졸업식도 하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운이 나쁘게도 학위 논문을 마치고도 전혀 쉬질 못했다. 꽈악 눌러 채운 8년의 첫 직장 생활이 끝났고 2월에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다.

도구로서의 아카이브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습관을 상실했고, 특히 학생들은 어떤 책이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즐거움을 얻는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비관론자들은 말한다. 나도 다른 저작자들처럼 이런 비관론자들의 말이 옳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하략)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제15판에 붙인 서문, p. 14(1989년 3월)

하지만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을 읽는 일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

김홍민,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p. 18

책 조차도 사정이 이러하니 ‘도구로서의 아카이브’ 가 재미있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카탈루냐 찬가, 페이퍼백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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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작품은 여전히 정치권력이 정보, 문서, 과거의 기억에 대한 통제와 결합되었을 때 발생하는 위험을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공상이다. Randall C. Jimerson, Archives Power: Memory, Accountability, and Social Justice, p. 21

Paperback은 작고 가볍고 아름답다. 후배가 스페인 출장 길에 사다준 펭귄의 조지오웰 <카탈루냐 찬가>도 그렇다. paperback에도 몇 개의 판형이 있지만1 그것들은 200mm를 넘지 않는다. 거칠지만 가벼운 갱지 혹은 재생지로 만들어 가방에 넣어 다니기 좋다. 시간 나면 아무데서나 꺼내어 읽으면 된다. 팔도 아프지 않다. 그리고 북커버 디자인은 정말 멋지다.2 게다가 저 커버 디자인은 펭귄의 전설의 북커버 디자이너 중 한 명인 David Pearson이 했다. 오마이갓.

반면 한국의 출판사가 만들어내는 거의 대부분의 책은 반양장에 변형된 A5크기이다. 종이는 하얗고 미끌미끌하며 무겁다. 불필요한 책 날개와 읽으면서 버리게 될 띠지를 두르고 있다. 왜들 이렇게 책을 만들어내나 물어봤더니. 사람들이 좀처럼 책을 읽지 않아서 한 권의 단가가 높아져야 출판사 운영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고급스러운(?) 부가 장치-책날개와 띠지를 해야 팔린다고 한다. 악순환이다.


  1. 전통적인 사이즈는 110 x 178 , 130 x 198 , 135 x 216 이라고 한다. 
  2. Book Cover Archive에는 정말 멋진 북커버 디자인이 많다. 

작품 자체

그(폴 세잔)가 종종 절망에 가까운 고심을 했으며 화폭에 정신없이 매달려 결코 실험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울 게 없다.

[…]

미술가들이 그토록 신경을 쓰는 균형과 조화는 기계의 균형과는 다르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며, 아무도 어떻게 또는 왜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세잔  미술의 비밀에 관해서는 많은 글들이 씌어졌다. 그가 무엇을 원했으며 무엇을 이루었나에 대해 갖가지 종류의 설명들이 제시되었지만, 그 설명들은 충분한 것이 못 되며 때로는 자가 당착으로 들린다. 비평가들의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를 짜증나게 할지라도 작품 자체는 항상 우리를 납득시켜주기 마련이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p. 416

<한겨레> 토요판 “윤상이니까 잠시 멈춰서서 음미해도 좋다“와 <서양미술사>의 ’19세기 후반’ 챕터를 비슷한 시기에 읽은 건 행운이다. 윤상의 “기념사진”, “새벽”을 다시 들어보고 내친 김에 레인보우 블랙의 “차차”까지 들어본다.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를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나머지를 기꺼이 희생시키는 것,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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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문고판으로 나온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동네 책방에 주문했고 구입해서 읽고 있다. 일단, 문고판이라는게 정말 매력적이다. 책 자체가 워낙에 두꺼운데다 도판이 절반이라 본문에는 성경처럼 얇은 종이를 사용했는데 이게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양장본이나 반양장본에 아주 좋은 종이를 사용하는 책은 불필요하게 무겁고 거창하다. 그냥 표지에는 본문보다 조금 두꺼운 종이를 쓰고, 본문은 갱지 비슷한 얇고 가벼운 종이를 사용하는 페이퍼백이 좋다. 한국 교육체계에선 미술사 뿐만 아니라 역사 일반이 지루한 암기 과목처럼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미술사가 이렇게도 흥미진진한 도전과 혁신의 역사일 줄이야. 곰브리치는 미술과 역사를 엮고 친절한 해석과 설명을 붙여 기원전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역사를 정리했다.

[…] 그들은 너무도 분명히 좋아하는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해주는 듯한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경우 무식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어쩐지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부르는 속물이 되고 만다. p. 34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p. 43

[…] 물론 이집트의 방식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안전했으며 그리스 미술가들의 실험은 실패할 때가 많았다. […]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당황하거나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출발한 것이다. p. 66

미술가의 수단이나 그의 기술적인 방법은 발전할 수 있으나 미술 그 자체는 과학이 발전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발전한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한 방향으로의 새로운 발견은 다른 방향에서의 새로운 어려움을 낳는다. p. 194 ~ 195

+ 1989년에 나온 15판 서문 중 일부,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습관을 상실했고, 특히 학생들은 어떤 책이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즐거움을 얻는 참을성을 잃어 가고 있다고 비관론자들은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요즘 애들 책 안읽는다’는 진단은 똑같은 듯.

동네 책방 – 만일

동네에 작은 책방이 생기려나보다. 온라인 서점이 동네의 작은 책방을 없어지게 했지만(먹어치웠지만), 롱테일은 이렇게도 가능한가보다. 알라딘 중고 서점이 처음엔 반가웠는데 문어발처럼 전국에 생기는 걸 보고 뜨악했었다. 몇 년 전 파리에서 들렀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처럼 작고 낡은, 먼지 폴폴 날리는 다락방 같은 그런 책방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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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는데 석 달이 지나고, 동네 책방이 이렇게 생겼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동네 책방에서 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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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해보니 이런 소개도.

만일, 책을 통해 새로운 선택과 변화를 상상해볼 수 있다면- 만일, 우리의 밥상, 일터, 소비, 동네, 사회가 변한다면- 만일의 세계를 꿈꾸는 <책방 만일>

  1. 망원동 399-46번지 1층

  2. 트위터 https://twitter.com/bookshop_ifso

  3. 페이스북 http://on.fb.me/Ve9eKu

  • 동네책방은 ‘파워블로거’가 소개하고, 그래서 ‘맛있다고 소문난'(맛있는 것과 맛있다고 소문난 건 다른 것) 맛집처럼 어디 멀리 사는 사람이 일부러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니다. 책방 주인의 취향대로 큐레이팅한 컬렉션은 작고 정성스럽다. 그래서 책방이다. ‘아, 이 사람은 이 책을 읽고 그 옆에 있는 이 책을 읽었구나’ 그 정도의 추천이면 충분하다. 업계 유명인사의 상찬이 없어서 외려 마음이 놓인다.

도널드 노먼과 니콜라 테슬라의 예측 – 모바일

모든 약속과 일정을 알려주는 주머니 크기의 도구를 원하는가? 나는 그렇다. 나는 언제나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컴퓨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비망의 모든 부담을 컴퓨터에 맡길 것이다. 그것은 작아야만 하고 쓰기에 편해야 한다. 충분하고 표준적인 타자 자판과 충분히 큰 화면을 갖춰야 한다. 그래픽 기능도 좋아야 하는데, 이것은 매우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기억(메모리) 능력도 필요하다. 또한 집과 실험실의 컴퓨터와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전화기와 연결하는 것도 편해야 한다. 물론 가격도 그리 비싸면 안 된다. 여기에서 내가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기술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단지 위의 여러 가지 기능이 한 가지로 통합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은 아직까지 그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5년 내에는 불완전하나마 그런 것이 나타날 것이며, 아마도 10년 내에는 완벽한 것이 가능할 것이다.

Donald A. Norman, 디자인과 인간심리(The psychology of everyday things), 1988, 학지사, pp. 100~101

도널드 노먼이 이 책을 1988년에 썼으니 그의 예상만큼 빨리 모바일 시대가 온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통찰임에는 분명. 물론 애플의 뉴튼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잡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효.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잘 다루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적어도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교양’을 제공하는 책.

TED 강연 디자인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3가지 방식

월간 <디자인> 인터뷰 (2010. 12)


update[2014. 11. 25]: 니콜라 테슬라의 무려 1926년 예측은 아래와 같다.

무선 시스템은 물리적 거리를 거의 없애줄수 있는 기술로써 인류가 발명한 어떤 과학 발명보다 큰 효용을 가져다줄 것이다. (…) 무선통신 기술이 전 지구적으로 적용되면 지구는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하나의 브레인을 갖게 될것. 인류는 거리에 상관없이 누구나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 할수 있게 될 것이고, 현재의 전화보다 훨씬 더 간단한 디바이스를 통해 수천마일 떨어진 사람과 실시간으로 통화할 수 있게 될것이며, 이 디바이스는 조끼 주머니에 넣어 다닐수 있게 될 것이다. 인류는 대통령 당선이나 월드시리즈 경기, 지진 등의 사건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경험하게 될것이다. A man will be able to carry one in his vest pocket

교토, 텐류지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을 때, 그 순간은 모두 일회적이고 고유하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시간이 그 일회성과 고유성을 보장한다. 심지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찍어내는 스냅샷 역시 그들 각자에게는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것이다. 이때 정말 놀라운 것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 ‘시간을 붙잡았다’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을 통해 매번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흐른다는 점이 새로이 증명된다는 데 있다. (빔 벤더스, 한번은)
2013 겨울 Kyoto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기다렸던 선생의 책이 도착했다.

늦게 회의가 끝나 집에 와서 대충 씻고 일단 펼친다. 사은품으로 받은 노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선생의 글을 김훈의 에세이만큼 좋아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 <한겨레>에 연재된 선생의 글을 읽으며 <말과 시간의 깊이> 다음에 나올 책을 기다렸다. 프랑스 말을 한국말로 옮긴 책과 비평집은 나왔는데 내심 출간을 기대했던 산문집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신문에서 오린 선생의 글을 여러번 읽고 가끔 베꼈다.

산문집을 기다린 이유는 산문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선생의 비평이 나같은 문외한에겐 어려웠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나 연구자의 글을 읽고 잘 이해가 안되면 죄스러워진다. 그건 김영민을 읽을 때 드는 기분과 같다.

어쨌든 나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이 책에 열심히 밑줄을 치며 읽고 있다. 자기계발서도 아닌 책에 무슨 밑줄이냐고 묻지만, 나는 이런 문장에 밑줄을 친다.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괴물이었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전두환의 시대가 혹독했다 하나 사람들은 한데 묶는 의기가 벌써 솟아오르고 있었다. 유신시대의 젊은이들은 자기 안의 무력한 분노 때문에 더욱 불행했다”
p.12 과거도 착취당한다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p.18 상상력 또는 비겁함

아껴서 한번 읽고, 7월 제주에서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는 ‘순정한’ 존경을 바쳐 이 책의 대부분을 대학 노트에 베껴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다. 혼자만 읽고 싶다. 그게 내가 선생의 책에 바치는 최고의 존경이다.

산만한 자들을 위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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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록부에 ‘주의가 산만하다’는 선생님의 지적을 한번도 받은 적은 없지만, 스스로는 늘 알고 있었다. 나는 ‘산만’했다. 매우. 모범생의 외피로 위장했지만 ‘딴 짓’을 서슴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토바이, 담배, 술, 만화책 따위.

김중혁의 산문 <뭐라도 되겠지>는 조금 읽다가 그만두고 책장에 처박아 놓았었는데 1년만에 다시 꺼내어 읽었다. ‘주의 산만’에 대한 반가운 구절을 발견하고는 이틀만에 다 읽었다.

“일본의 동화작가 고미 타로의 책 <어른들(은, 이, 의)문제야>에는 나처럼 산만한 사람들에 대한 글이 나온다. “저는 마음이란 산란해지기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란해지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 글자의 생긴 모양이 시선을 모읍니다. 권權이나 군軍같은 글자는 획들이 모두 확실하게 붙어 있지만 심心은 각각 떨어져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산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깜짝 놀라고 두근거리고 용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몇 십년 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썼던 누명을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산만해도 괜찮다고, 산만한 게 나쁜 건 아니라고, 고미 타로가 나를 위로해주었다”(156)

작가 자신 만큼 산만한 한 예술가를 만나 목표가 뭐냐고, 묻고는 자신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후회한다.

“예술에 목표 같은 건 없다. 집중을 요구하는 권權이나 군軍에는 뚜렷한 목표가 있겠지만, 마음이나 예술에는 목표가 없다. 마음을 기록하는 예술은, 그래서 산만한 자들의 몫이다”(157)

마침 즐겨 읽는 블로그에서도 ‘산만함’과 관련한 ‘응원’을 읽었다.

혁신을 낳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을 응원하자

“모범생을 키우는 일본의 교육이 창의적인 인재를 말살하고 있다. 권위를 부정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면서 가설을 생각해 나가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렇게 Creative를 Unlock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이 이토, MIT미디어랩)

많은 사람들이 산만함, 이라는 ‘평가’때문에 고민하지만, 그건 그저 다른 기능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