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 여행가

아내는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앞에 두고도 고민이 많았다. 나야 노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아내는 여행을 좋아해서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는데, 언제부턴가 그 일이 그녀에게 많이 힘들어보이기 시작했다. 2013, Firenze, Italy


나는 프로그래밍을 사랑한다. 또 그 사랑이 순수한 것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은 유보되거나 자연스럽게 폐기된다. (중략) 이래서 정말 좋아하는 일은 취미벽 안 쪽에 완고하게 격리시키고, 직업이 얼씬도 못하도록 경비해야 한다. 이고잉, 직업과 취미

Harry’s Truman Razor

취향은 어떤 경험을 통해 생기거나 다듬어지고 익숙해지기도 하는데. 가끔 ‘발견되기도’ 한다. HARRY’S Truman의 매끈한 핸들을 봤을 때 딱 그랬다. ‘아, 저걸 한 번 만져봤으면…’ , ‘면도기의 핸들이라는게 저럴 수도 있구나.’ , ‘맞아, 저게 내가 원하는 면도기 디자인이었지.’


(거의 대부분의)남자들이 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면도를 한다. 개귀찮다. 면도기 하나에 많은 관심을 두진 않는다. 나역시. 흔히 쓰는 건 질레트나 쉬크. 대형마트에서도 동네 슈퍼에서도 판다. 3중날보다 4중날이 비싸고, 4중날보다 5중날이 비싸다. 몇년 사이 면도기 회사들이 날을 늘려가는 걸 보면서. ‘그럼 10년뒤엔 한 15중날 –질레트퓨전프로글라이드파워피프틴블레이즈레이져- 이런게 나올까?’ 생각도 했다. 가끔 여행이나 출장으로 늘 쓰던 그걸 챙기지 못했다면 편의점에서 몇 백원짜리 Bic이나 도루코를 집는다. 그것도 아니라면 호텔(모텔)에서 판매하는 반투명 비닐팩을 산다. 거기엔 면도기를 포함해 칫솔, 치약, 샴푸, 린스, 일회용 헤어밴드, 콘돔 따위가 들어있다. 물론 두 개씩. 천원. 한 때 턱수염 좀 길러보겠다고 필립스나 브라운의 트리밍이 가능한 전기면도기도 써봤지만. 문제는, 난(우리는) 털이 적은 종족이었다. 그럴싸한 트리밍을 위해서는 구레나룻에서부터 턱과 코밑에 이르기까지 수염이 많아야 밸런스가 맞는데, 그거 좀 길러보겠다고 며칠씩 면도를 안하면 그 중 몇 가닥만 길게 자랐다. 젠장. 그리고 이런 핀잔이 따라왔다. “야, 너 면도 안하고 다닐래? 드러운 놈” 아아아…


Harry’s는 Tech Crunch – Warby Parker Co-Founder Launches Harry’s, Bringing The Startup’s Buy-One-Donate-One Model To Shaving 를 읽다 알게 됐다. Warby Parker 라는 안경-선글래스 스타트업이 독특한 판매와 브랜딩 전략으로 화제가 됐는데 워비파커의 창업자이기도 한 Jeff Raider가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작했다고. 이번엔 면도기. Jeff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면도 시장에서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특히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식인데, 워비파커와 마찬가지로 디자인, 생산, 유통을 통합하는게 그것이었다.


각종 리뷰를 뒤졌다. 그걸 읽지 않았더라도 샀을테지만. 미국의 배송대행지를 거쳐 인천에 도착. 뉴욕 폭설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무슨 그까이꺼 면도기까지 직구를

2014-11-25 20.57.01

우선 패키지. Truman set는 $15인데 패키지가 이 정도. 면도기, 쉐이빙 젤, 여분의 날 2개, 휴대용 커버. 거기에 $10를 더해 애프터 쉐이브 모이스춰라이저를, $15에 여분의 날 8개를 더 구입했다. 총 $40. 읽어본 모든 리뷰의 “Good shave at a fair(affordable, competitive) price” 에는 이견이 없다. 질레트나 쉬크의 억센 투명 플라스틱 패키지의 거칠게 뜯긴 단면이나 모서리에 손을 베거나 찔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해리스는 만년필 패키지같다. 스윽- 밀거나 손가락의 경쾌한 힘으로 작은 상자를 열면 된다. 첫 인상이 부드럽다. 이런 경험은 중요한데, 사납게 뜯어버린 패키지는 쓰레기가 되지만, 순하게 연 상자는 곧장 휴지통에 던져버리기엔 아깝기 때문이다.(이런 걸 쿠퍼티노 놈들이 잘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핸들handle. 날blade이 아니고. 적당한 무게와 미끈한 디자인은 최고. 손에 쥔 ‘그립감’이 아주 좋다. 질레트, 쉬크, 도루코 등 다른 제품의 핸들은 손에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상어 등지느러미 같은 돌기를 핸들에 박어 넣곤 하는데, 문제는 이게 좀 마초적으로 보일 정도로 못 생겼다는 점이다. 반면 해리스 Truman의 경우 아연 합금(zinc alloy)을, 상위 라인인 Winston은 알루미늄을 사용해서 알맞은 무게를 통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건 우리가 중지-약지-소지와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핸들을 잡는 힘에 신경을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제품의 컬러가 남자다운 검은색이나 형광의 파란색, 주황색을 섞은 것임에 반해, 해리스 트루먼은 핸들에 한 가지 색을 사용한다. 컬러 옵션으로 노틸러스 블루, 아이보리, 올리브, 오렌지의 네 가지를 제공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질레트-쉬크-도루코의 디자인이 좀 과장된 것이라면(very cheesy overly decorated look) 해리스는 우아하다.(elegant and understated or sexy-looking) 원래 클래식한 디자인이 쉽게 질리지 않는 법이다. 한 리뷰어는 해리스의 핸들 디자인을 “it’s the iPhone of razors” 라고 평했는데 무엇을 더 말하리오.

쉐이빙 크림과 젤이 옵션인데 나는 젤을 선택했다. 해리스의 멘솔과 유칼립투스향이 좋긴 하지만 리뷰어들은 다른 제품에 비해 좀 별로라는 평을 줬다. 이유는 거품이 잘 안난다고. 나는 그런 점을 특별히 느끼지는 못했다. 아마도 깎아야 할 털이 많은 yankee(비하 아님)들의 경험에선 그럴 수도. 그간 써오던 질레트 쉐이빙 젤의 과한 멘솔이 면도 후 피부를 자극하는 것 때문에 따끔거렸는데, 해리스는 그런 자극이 덜했다.

1개의 면도날은 6일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은 합리적이다. 16개들이 패키지의 경우 개당 $1.56로 질레트의 5중날이 개당 $3.56 인데 비해 훨씬 저렴하다. 턱이나 코밑의 수염을 밀어낼 때의 밀착감이 아주 훌륭하다. 패키지를 열 때의 경험과 근사한 핸들 디자인의 잔영 때문이 아니라 정말 좋았다. 면도를 하면서 우리는 미세하게 피부를 깎아내는 셈인데 면도날이 잘 밀착되면 같은 부위를 한 번만 지나가도 된다. 그런 점에서 해리스는 이제까지 써 본 것 중에 최고였다. 창업자 Jeff는 1년 동안 십수 개의 제품 조사를 거쳐 독일의 한 엔지니어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면도날의 품질 기준에는 여럿이 있고 그 중 하나가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는 날카로움인데 그걸 충족시켰다고. 한 리뷰어는 면도 후 욕실의 습기 때문에 날이 금방 둔해졌다고 하는데 이 코멘트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았고 그는 다른 면도날을 써보고 자신의 의견을 고쳤다. 그건 아마 니가 털복숭이라서 그랬겠지…

그 밖에. 질레트 퓨전 프로글라이드 파워 같은 전동 기능의 부재가 언급됐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게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단지 그것 때문에 질레트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또 워비파커가 챈들러나 버켓 등 사람 이름을 제품명으로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해리스는 트루먼이나 윈스턴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이유는 좀 더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제품 한 개를 사면 해리스가 한 개(에 해당하는 금액)를 기부하는 것도 워비파커와 같은 정책.

끝으로 사용설명서(라고 하기엔 면도기에 무슨 사용설명서) 2페이지의 유머에 또 한 번 감동. 이런 디테일을 엄청아주무척완전 사랑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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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리뷰

A Review of Harry’s Shaving Products

Razorpedia – Harry’s Razor Review

세 줄 결론.

  1. 사라, 두 번 사라.

  2. 수염이 적게 나는 게 아쉽…

  3.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

More blogging

지난 십여년간 주목한 모습으로서의 블로그는 쇠퇴했지만, 블로깅은 계속, 혹은 더욱 더 활발하다. 마치 신문의 수익성은 줄고 있지만 저널리즘은 더욱 커가고 있고, 음반 수익은 줄고 있지만 누구나 음악을 점점 더 많이 듣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자유롭게 선보이는 개인들의 식견과 목소리를 통해서 모든 소재에 대한 더 깊고 활발한 담론이 가능한 한 층 이상적인 공론장을 탄생시킨다든지 하는 거창한 희망을 실현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더 좋은 글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소개하며 여타 온라인 서비스와 경쟁과 연계를 하며 그 과정에서 수익모델도 창출하는 것도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좀 더 소박하게나마, 이왕이면 블로거들이 자신의 전문적 식견을 발휘하도록 독려하고, 가면을 쓴 마케팅 활동보다는 솔직한 감상과 건설적 비판을 나누도록 하는 방법 정도는 누구라도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 블로그, 아니 블로그로 지칭되는 개인의 미디어 역할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이기 때문이다.

capcold – 한국 블로그 문화를 돌아보기

온전한 정신

마인크래프트(Minecraft)를 만들고 MS에 2조6천억에 매각한 Mojang의 Markus Persson이 회사를 떠나면서 쓴 글. 순전히 그 일이 좋아서 시작하고, 그것에 고요히 몰입하고, 이후에 (좋든 나쁘든)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나는 단지 재밌고, 사랑하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게임을 만든다. 커다란 히트를 위해서 만드는게 아니다. 나는 세상을 바꿀 생각이 없다. 마인크래프트는 크게 히트했고 사람들은 그게 게임을 바꿨다고 내게 말한다. 그건 내가 의도했던 게 아니다. 좋은 일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나)

나는 기업가(entrepreneur)도 CEO도 아니다. 나는 트위터를 즐기는 nerdy computer programmer이다.

[중략]

I love you. All of you. 마인크래프트가 이렇게 된 것에 감사한다. 그런데 이 큰 걸 내가 다 책임질 순 없다. 마인크래프트는 MS의 것이 되었고, 더 중요하게는 당신들 모두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온전한 정신에 대한 것이다.

I’m leaving Mojang 

Ello- You are not a product

언젠가부터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바꿔서,
내 친구, 나의 팔로잉 페이지의 글(들) 마저 하나의 스트림으로 주욱- 읽기 어렵게 만 들었다. (내가 검색한 키워드의)스폰서 광고가 붙고, 단지 like와 comment가 많다는 이유로 내가 원하지 않는 ‘인기있는’ 포스트를 노출시킨다.

기업은 fb에 돈을 내고 fb은 그런 광고를 내 친구들의 포스트 사이사이에 넣는다. 지난달 발표한 이들의 2014년 3분기 매출은 32억 달러였고, 광고 매출이 29억 달러, 그 중 모바일 광고 매출은 전체 광고 수익의 66%.
이들은 홈페이지의 시대를 끝냈다지만(How Facebook Could End Up Controlling Everything You Watch and Read Online) 그것이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우리의 라이크와 코멘트가 어딘가에서 광고주들에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다. F8컨퍼런스에서 맨발에 아디다스 삼선 ‘쓰레빠’를 신고, 회색 후드티를 입은 주커버그가 소셜그래프가 어쩌고 말을 해도, fb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Mark Zuckerberg’s Letter to Investors: ‘The Hacker Way’)에서 ‘더 열린 세상과 더 촘촘한 연결이라는 사회적 사명’을 말해도,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본사 거리를 ‘해커웨이’라고 이름 붙여도, fb은 점점 광고판이 되어 간다. 비록 지금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한편, 연결의 더 나은 길이 있다고 믿는다는 Ello의 매니페스토는 이렇게 시작한다.

Your social network is owned by advertisers. Every post you share, every friend you make and every link you follow is tracked, recorded and converted into data. Advertisers buy your data so they can show you more ads. You are the product that’s bought and sold.
We believe there is a better way. We believe in audacity. We believe in beauty, simplicity and transparency. We believe that the people who make things and the people who use them should be in partnership.
We believe a social network can be a tool for empowerment. Not a tool to deceive, coerce and manipulate — but a place to connect, create and celebrate life.

You are not a product.

당신의 소셜 네트워크는 광고로 가득차 있고, 글과 친구, 링크 모든 게 다 추적-기록되어 데이터로 바뀌어 광고업자들의 손에 넘어가서 당신 자체가 상품이 된다

페이스북이 거대한 폐쇄적 웹-광고판으로 변하는 동안 “더 나은 길이 있다고 믿는” 이들 또한 새로 태어난다.

나의 Ello

아이팟 클래식, 끝.

2014-03-26 14.21.20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에 말을 거는 재생목록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팟을 들여다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 보는 일이었다. 그 사람의 음악에서 그가 누구인지 보았다. 그가 세련된 사람인지 거친 사람인지(sophosticated or rough)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 순간의 재생목록도, 사랑에서 빠져나온 순간의 재생목록도 볼 수 있었다. 무척 고지식한 사람의 작은 흰색 상자 안에 가장 상스럽고 추잡한 힙합(the filthiest, nastiest hip hop)이 들어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내면적인 삶을 예전보다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내가 듣는 음악으로 내가 여전히 규정되던 때가 그립다. 나의 음악은 여전히 나의 음악이다. 나는 전복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던 젊은 시절이 그립다. 훔친 노래를 주머니에 담고, 흰색 케이블이 목에 똬리를 튼 그 시절. 이런 것을 위한 앱은 결코 없을 것이다.

죽음과 아이팟에 대해: 진혼곡

On Death and iPods: A Requiem

2014년 9월, Apple은 공식적으로 아이팟 클래식 판매를 (조용히) 중단했다. 이미 뮤직App이 MP3 player의 지위를 위협한지 오래. 이제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모바일 웹서핑을 하고 메신저와 페이스북도 할 수 있게 됐다. 뭔가 많이 더해진 것 같고, 전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외려 너무 많아서 조용히 음악에 몰입하는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네 커피집, PP Coffee

2014-08-10 12_Fotor 2014-08-10 1201_Fotor

맛있는 커피콩을 찾아 안정적인 거래를 계속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서교동의 더블하모니, 연남동의 리브레는 그런 곳이다. 망원에는 없을까, 했는데 있다.

허름한(이건 세련된 취향을 다듬거나 포장한 낡음이 아니라 진짜 허름한) 간판, ‘커피부페’라는 저렴한 문구, B1이 아니라 ‘지하’라고 표기한 안내판…뭐 하나 기대할 것 없이 들어갔다. 무슨 실험실 같은 분위기에 한 쪽에선 주인장(바리스타…라고 쓰기엔 좀 뭔가…)이 피자를 굽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선 견습생이 커피를 내리거나 콩의 향을 맡고 있는 게 아니라 드라이버를 손에 쥐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마이갓. 더블샷 정도가 아니라 진하기가 트리플샷이고, 에스프레소 머신은 교육용으로만 사용하고 융드립을 전문으로. 필리핀에 커피 농장을 갖고 있지만 진짜 맛있는 야생콩은 해발 700~1,400미터에서 얻는다면서 무심하게 융드립을 계속 하는 아저씨.

피피커피, 망원동 394-75

 

 

책 정리

책 정리

부모님 집에 있던 책 몇 박스를 정리했다.
저런 것도 읽었나 싶을 정도로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군 입대 전까지는 지식의 허영에 빠져있었다.
책 속의 세계는 무결했고, 그래서 종종 선배들에게 물었던 것 같다.

“아니요, 선배.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던데요”
“선배, 근데 루카치가 역사와 계급의식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선배들은 “임마, 그런 책 읽지 말고 실천을 해. 농활이나 가자”로 응수했다.
그리고 몇몇 선배들은 ‘참봄’이나 ‘어바웃’을 권하기도 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은 그저 재활용 쓰레기다.
계급의식, 맑스, 통일, 분단 등의 말도 지금의 내겐 아마 그럴 것이다.
그걸 삶에서 실천하는 일은 “너 아직도 그 일하니? 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라는 말을 듣는 낯선 소수의 일이라 생각하는지도.

요즘 사무실에선 업무와 성과급 등 불평등한 제도 개선 문제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간다.
상식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치자는데, 난데없이 “요즘 젊은 것들은 희생과 헌신이 부족해”라거나, 괜히 분란 일으키지 말아라,고 (어줍잖게)충고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는 그 눈빛 뒤에는 아마도.
청년 실업이 심각한 세상이야. 니네 나가도 뽑을 애들 많아…그런 생각도 있겠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건너온 선배들이 그 ‘고난’에 대한 보상과 반대급부를 다른 세대를 참신한 방식으로 ‘억압’하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을테니.

그러니 고작 책을 읽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을 것. 외려 책으로만 세상을 읽고 그들 자신이 변하는 일이 훨씬 많다는 한 선배의 말이 맞을지도.

여행이란

여행이란

여행이란 주어진 보상 그 자체이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그게 끝일 뿐이다.
랜디 코미사, 승려와 수수께끼 중 “The Road”(epilogue)

교토에 다녀온지 한 달. 몇 장의 사진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 때, 거기에 서서 셔터를 눌렀던 느낌만이 남아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녀온 여행에서 남는 것은 음식, 풍경, 쇼핑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거기에 다녀왔다는 것, 오로지 그것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