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의 콘텐트(2)

서울기록원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은 아카이브의 콘텐트(1)에서 밝힌 것처럼 ‘그릇’을 만드는 사업이다. 그릇을 만드는 팀은 당연히 무엇을 담을지도 미리 고민해야 한다. 간장종지에 국을 담을 수 없고, 평평한 접시에 담은 밥알은 뜨기 힘들다. 거의 대부분의 공공기관에는 in-house 개발팀이 없고 회계연도 단위의 아웃소싱에 의존해야 한다. 이것은 근본적인 한계이고 ‘iterative and incremental development’은 우리에게 ‘먼 산’일 뿐이다. 모든 것을 다 고려하고 준비할 수는 없지만 지금 조직에서 수행하는 몇 개의 ‘사업’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DB’사업이 그렇다. 그릇에 무엇을 담을까.

디지털 아카이브는 기록정보를 조직하는 툴이거나, 계층적으로 조직된 기록정보를 입수하여 관리, 보존, 서비스한다. NARA 디지털 아카이브의 모든 기록정보는 Catalog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조직된다. 이른바 ‘DB사업’이라고 부르는 Digitizing Project도 그 중 하나이다. 아니, 최근에 NARA 2에서 확인한 바로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단지 스캔 이미지가 아니라 카탈로그를 풍부하게 하고 자원 사용의 효율을 높인다.

2014년 겨울에 발표한 Strategy for Digitizing Archival Materials for Public Access, 2015- 2024는 10년짜리 전략을 담고 있다. 전략문서이지만 현업에서 유사한 프로젝트를 해봤다면 읽는데 큰 무리는 없다. 순전히 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NARA의 다른 전략이나 계획을 담은 다큐먼트와 마찬가지로 기관의 미션을 먼저 밝히고 프로젝트가 그에 수렴함을 확인하고 있다. “The records we hold belong to the public and our mission is to drive openness, cultivate public participation, and strengthen our nation’s democracy through public access to high-value government records.”
  2. 계량화할 수 있는 디지타이징의 업무 성과는 중요하다. 그것이 public access라는 미션과 결합하면 설득력이 더 커진다.
  3. 다른 플랫폼에서도 재사용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NARA보다 Google에서 그들의 리서치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4. NARA는 대통령 도서관(센터), 다른 아카이브 뿐만 아니라 기업과도 활발한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있다. 협력 대상으로 삼고 있는 다른 분야 또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란 무엇일까. “To expand upon this success, NARA will cultivate and attract additional partners from other fields and different business models, which will encourage the digitization of a greater diversity of our collection.”
  5. 이게 정말 중요한데, 카탈로그 제작을 위한 series-level description은 그들이 보유한 영구 기록의 85%를 포괄하고 있다. 디지타이징 프로젝트는 여기에서 시작할 것이다. 가치평가의 우선순위를 결정하지 않은 기록군집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거기엔 자원배분과 투입을 위한 효율이 부족하다. 비효율은 향후 프로젝트 펀딩의 리스크를 높인다. 잘 생각해보면 상식적이다. 디스크립션을 확인하고 대상을 선정하면 디지타이징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올라간다. 또 그 결과물(스캔 이미지)은 필수적인 아카이브 컨텍스트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NARA가 영리하게 운영하는 Crowd-sourcing 기반 프로젝트에서도 상당한 효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6. Digitizing Project를 Catalog API와 어떤 workflow로 엮는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련의 자동화 모델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By incorporating digitization and a focus on online access into our work processes, NARA will ensure images can be efficiently added to our catalog. Business processes for archival digitization will ensure that content can flow seamlessly into the catalog.”

서울기록원 TF가 정식조직이 되면 그와 동시에 정보공개정책과의 기존 사업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아직 아카이브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원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야만 한다.

 

Slack

프로젝트에 슬랙을 사용하고 있다.

2015년에 알게 됐는데 혼자서 이것저것 해보다가 이내 그만뒀다. 다른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그렇듯 상대방 없이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가 서울기록원 ISP 프로젝트를 하며 다시 쓰게됐다. 파트너와 마음이 맞았고, 그들은 프로젝트에 슬랙을 쓰자는 내 제안을 받아줬다. 지금 우리 팀은 슬랙 없이는 일을 못한다.

서울시에서 슬랙을 쓰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시 보안 담당 부서가 (그놈의)보안상의 이유로 온갖 메신저를 다 막아놨기 때문이다. 설마 이 서비스도 알까, 슬랙에 접속했는데됐다. 사실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공무원스러운) 보안 정책인가. ‘유해사이트라고 규정하고 특정 웹사이트 주소를 하나씩 차단하는 일 말이다. 방법을 공개하진 않겠지만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은 늘 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그우회를 위해 우린 가장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의 보안은 사람이다.

도구 자체가 평등하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당연히. 그럼에도 도구는 분명히 필요한 조건이다.

메일은 수신자를 지정하고, 제목을 붙여, 내용을 써서, 발송한다. 슬랙에서는 내용을 쓰고, 발송한다. 슬랙에발송send’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발송 버튼도 없다. 그냥 엔터를 누른다.

차이가 무엇일까. 단순히 짧아진 절차의 편리함 때문만은 아니다. 메일은 편지를 쓴다는 행위 자체를 준비하고 실행하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상사에게 하는 보고와 동료와 나누는 대화는 다르다. 절차 뿐만 아니라 자세와 마음이 다르다. 자세와 마음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필요 조건이다. 그게 없으면 도구는 부차이다. 그래서 슬랙은 메일이라는 일종의보고와는 다르게 말걸기에 가까운 행동을 하게 해준다.

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업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을 체계화하는 것이 조직의 혁신적 문화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같다. 제품과 사용방법을 밝히진 않았지만 <Open Government Plan 2016~2018> 2.5 Employee Engagement에서 일부를 엿볼 있다.

매니저나 수퍼바이저는 더 풍부한 고급의 정보를 갖고 있다. 미 연방 행정조직(NARA)은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고위직으로부터 정보가 공유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고민한다.

We will further improve the preparedness of our employees to perform their work and engage with coworkers and the public through an improved pipeline of information aimed directly at staff, particularly by improving the information resources of our managers and supervisors.

놀라운 것은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이 새로운 매니저와 수퍼바이저가 받게 되는 오리엔테이션의 하나라는 것이다.

New managers and supervisors also receive communications training as part of their orientation, and leadership prepare Leader Facts to share with manager and supervisors on timely and sensitive topics so that they can discuss those issues with their staff members.

그들이 사용하는 ICN(Internal Collaboration Network) 무엇인지를 밝히진 않았지만, 프로젝트 관리와 내부 정보의 공유에 힘쓰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NARA staff members are also using the ICN to manage complex projects among team members and to provide increased transparency to internal meetings.

The ICN is an essential tool for our open government efforts to increase internal transparency, participation, and collaboration.

+ 외대에서 시작한기록과 정보문화 단톡방’(?) 200명 가까이 있다는데, 그건 도구를 가장 어지럽고 비체계적으로 쓰는 방법 중 하나이다. 커뮤니케이션 쓰레드thread에는 기록학 대학원에서 배우는 분류와 정리가 적용되어 있어야한다. ‘모든 말 대잔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내게 참여 의사를 묻지도 않고 초대된 그 방에서 난 나와버렸다.

+ 정작 한국 공공기관은 메일 아카이빙을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영국 The National Archives Digital Strategy 2017~2019에서 Slack 메시지도 아카이빙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카이브의 콘텐트(1)

서울기록원 디지털 아카이브의 그릇을 만들고 있다. 이 사업으로 수집과 보존, 서비스의 3개 영역을 모두 다루게 된다. RFP를 만들던 작년 말과 올 해 초, 사업 발주와 업체를 선정하던 3~4월, 계약 후 1달이 지난 지금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 순차적인 진화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연히) 각 시기별로 집중했거나 골몰했던 주제가 다르다. 좁혀가면서 ‘아카이브의 변하지 않을 어떤 것’을 찾고 있다.

그간 한국의 아카이브 업계가 많은 고민을 했던 Records Mgmt. 영역, 정확히 말하면 ‘시스템에 삽입 개발된 워드프로세스에서 만들어진 전자결재문서’가 마치 전부처럼 보였던 ‘전자기록’은 뒤로 미룬다.(정확히 말하면 나는 이게 전자기록이 아니라 엉뚱하게 번성한 ‘전자정부’라는 이름의 System Integration 사업의 ‘폐허’라고 본다.)

대신 팀은 기록의 조직화와 연결을 위한 체계에 집중하고 있다. NARA와 TNA를 비롯한 대다수, 아니 거의 모든 아카이브의 핵심인 Catalog, Research Guide 제작을 위한 기록 조직화가 더 중요한 과업임을 팀을 알아가고 있다. 카탈로그와 리서치 가이드 제작 과업엔 이견이 없다. 다만 한국의 아카이브가 아직 거의(국가기록원이 일부 했지만 기형적이다) 시도하지 않아서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을 뿐이다.

카탈로그와 리서치 가이드가 아카이브의 콘텐트일까? 콘텐트(츠)에 대한 정의는 업계의 특성상 자유롭지만, 적어도 아카이브라면 저것 없이 유지되긴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이나 책, 영화 등의 그나마 정형화된 콘텐트 비즈니스와 아카이브가 다른 점은 맥락과 연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맥락과 연결이 기록을 군집으로 묶고, 집합 기술이나 다계층 description은 빛을 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검색어 입력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보통의 검색 경험 대신, 유저를 안내할 어떤 ‘지도’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지도에는 특정 주제와 관련된 아카이브의 기록 보유 현황이나 추후 입수 계획, 하위에 묶인 컬렉션(몇 개 또는 그 이상)의 링크, 연구나 조사를 위한 핵심 정보, 관련해서 이미 누군가 연구한 레퍼런스 등이 포함될 것이다. 물론 어떤 카탈로그나 가이드에는 더 상세한 정보를 수록한다. 지도는 건조한 설명 톤을 유지하고 여기엔 우리가 한국 아카이브에서 보았던 ‘콘텐츠’는 없다. 모든 형식의 기본은 동일하고 개별의 주소를 가진 웹사이트처럼 나뉘지 않는다. 카탈로그와 가이드는 특정한 유저 그룹에만 도움이 되는거 아니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그건 주관기관과 기술 파트너가 결정할 문제이고, 설문 따위로 이용자를 조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당돌한 야심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업은 그릇을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다. 그 안에 들어가야 할 콘텐트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아직 행정 조직은 결정하지 않았다. 그 결정을 6월 30일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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