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전 캡틴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일 년 만이었다. 아니 ‘전’을 빼야한다. 유일하게 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이 일, 이 업에 대해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와 나는 한동안 어색하고 데면데면했다. 서로 찾지 않았고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말이 사이에서 떠도는 느낌이었다.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누구의 말처럼 그에게 동의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그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료관의 일을 중추에서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를 찾아간 이유는 여기에서 일을 그만두는 마당에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고, 내가 언제 도움을 받을지 모르니 드는 보험’ 이 아니었고 순전한 우정과 의리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꼭 직접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거기엔 돌아올 보상이나 기대 따위는 없었다.
학위 논문을 막 끝내고 쉬던 2007년 말의 늦은 겨울이었다. 그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던 식당이며 그 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메뉴며 다 기억이 났다, 선명하게.
사직원이야 행정의 일부일 뿐, 중요한 것은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가 내게, 지금은 내가 그에게 할 말을 하는 것.
캡틴이다. 상사나 선배, 선생보다는 캡틴이 가장 적절했다. 지금도 그렇냐고 물어보면…그렇다. 업무 지시는 상사에게 받을 수 있지만 캡틴과는 방향과 조타를 논의하고 결정한다.
첫 직장에서 ‘캡틴’을 만나긴 어렵다는데, 난 운이 좋았다. 그는 큰 그림과 더 먼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사소한 일들에 크게 마음 쓰지 말 것, 다른 무엇보다 아카이브에, 오로지 그것에 집중할 것을 요청했고 당부했다. 그는 자잘한 갈등에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다만 결정했다. 내가 가져간 허술한 사업계획서에 유일하게 빨간줄을 치며 고쳐주었고 나는 그에게 일을 배웠다.
매사에 나는 ‘그라면 어떻게 결정했을까’ 를 생각했다. 그에게는 ‘시시콜콜악마’가 없었고, 대신 큰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줬다.
경험상 대부분의 일이 그랬듯 가장 어려운 일은 정면에서 보는 게 가장 빠르고 쉬운 해결방법이다.
오랜만에 아카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긴장 속에서 했는데 마음은 더 없이 편안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관점이 다르고 세부의 사안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랐다. 자칫 또 논쟁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고 싶었던가.
서로에게 서운했던, 그래서 오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했다. 삶이 그런거니까. 이문동 허름한 동네 통닭집의 김빠진 맥주와 맛없는 통닭은 맛있었다. 낮술 조오타.

늦포도

제 자신에 대해 간단히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늦포도를 따는, 즉 첫 서리가 내린 후 포도가 가을의 향내를 그윽하게 내뿜을 때 포도송이를 수확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최초의 주목할 만한 책을 쓴 것은 47세와 57세 사이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창조의 정점이 지나가 버린 나이입니다. 이것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이루어진 10년 간입니다.  – 아놀드 하우저, <예술사의 철학> 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서 2008년 1월 23일에 일을 시작했고, 2016년 2월 14일부로 사직원을 제출했다.

사직원 사유란에 무얼 채워야 하나 고민했다. 선배는 ‘일신상의 이유’라고 적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많은 고민을 했고, 이직을 위한 결정과 절차는 갑작스러웠는데 사직은 의외로 싱거웠고 행정적 절차는 무심했다. 몇 사람이 “어디로 가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고 그들로부터 소소한 이별의 선물까지 받았는데 정작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운이 좋게도 대학원 졸업식도 하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운이 나쁘게도 학위 논문을 마치고도 전혀 쉬질 못했다. 꽈악 눌러 채운 8년의 첫 직장 생활이 끝났고 2월에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