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OPEN ARCHIVES 작업일지

기획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여 출판하면 기획의 본질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마스다 무네아키, 라이프 스타일을 팔다: 다이칸야마 프로젝트, p. 18

오픈 아카이브 사업을 준비하면서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과정’이다. 결과로서의 아카이브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과정의 고민과 시행착오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 또한 분명 누군가에게 1cm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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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로서의 아카이브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습관을 상실했고, 특히 학생들은 어떤 책이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즐거움을 얻는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비관론자들은 말한다. 나도 다른 저작자들처럼 이런 비관론자들의 말이 옳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하략)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제15판에 붙인 서문, p. 14(1989년 3월)

하지만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을 읽는 일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

김홍민,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p. 18

책 조차도 사정이 이러하니 ‘도구로서의 아카이브’ 가 재미있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Snowfall 대신 GIF

문학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행동과 글쓰기가 엄격하게 교대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괜히 젠 체하기만 하며 일반적인 제스처만 취하고 마는 저서보다 현재 활동 중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기에 훨씬 더 적합한, 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 즉 전단지, 팸플릿, 신문 기사와 플래카드 등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처럼 기민한 언어만이 순간순간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온갖 의견이 사회적 삶이라는 거대한 장치에 대해 갖는 관계는 기름과 기계의 관계와 동일하다. 아마 터빈 위에 서서 위에다 기계유를 쏟아 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조금 쳐주는 것이 다일 텐데, 그러자면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주유소’, pp. 13 – 14

콘텐트는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디바이스의 기술적 발전과 함께 간다. 사람들은(우리는) 더 이상 교조와 설명, 명분을 장착한(!) 지루한 동영상을 보지 않는다. 그것을 대체할 콘텐트는 너무도 많다. 당장 스미소니언의 저 발랄한 GIF 콘텐트를 보라. 이것은 (한국의)아카이브가 기존의 콘텐트 비즈니스 모델을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수천만원(혹은 수억) 단위 예산, 지루하고 긴 사업계획서(와 RFP), 몇 개월의 기간, 하나의 큰 결과물…

NYT가 퓰리처에 빛나는 Snowfall을 파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스스로 말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완벽에 가깝게 다듬어 매일 ‘발행’하는 종이신문과는 달리, 디지털 실험은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지속적인 개선 작업 싸이클을 통해 다듬어 나가야 한다. 성능을
측정하고, 결과를 연구하고, 실패한 것은 버리고 성공적인 것들만을 골라 발전시킨다.

보존, 생각의 전환

한 때 GOLD DVD 제품을 보존(안정성, longevity)의 끝판왕이라고 했던 적도 있다. 이미 6-7년 전 일이다. 당시 사료관은 고화질 이미지 TIFF(60MB/1장)를 DVD에 담아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그 당시에도 DVD 산업은 사양길의 초입에 있었다는 것. 늘어나는 파일 크기와 데이터 규모를 감당하기에 DVD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아카이벌 디스크'(사실 이게 기술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가 얼마나 큰 용량과 안정적인 보존 기술 기반을 갖고 있는지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닌 듯하다. 정작 중요한 지점은 아카이브 보존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기술의 발전속도를 아카이브가 따라가는 일은 벅차고 감당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아카이브가 적용하는 일일텐데 정책은 완고하고 의사결정은 더디다. 이미 한 장의 DVD에 수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작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료관은 10년도 더 된 구술 영상 사료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약900시간의 분량인데 크기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다. 보통 1시간 분량의 6mm 비디오테잎 영상을 mov로 전환하면 30GB 크기이다. 듀얼레이어 DVD나 블루레이 디스크가 수용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규모이다.  당연히 레이드로 묶은 TB 급의 스토리지로 간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결정은 별도의 mpeg-2 규격의 보존용 파일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비스용 mp4 규격의 파일만 물리적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파일은 모두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iframe embed 코드로 웹사이트에 삽입한다. 유튜브가 우리의 거대한 서비스용 아카이브가 되는 셈이다.

반드시 아카이브가 모든 것을 다 물리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까? 그게 아카이브 보존의 유일한 방법일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제 보존은 파일-데이터의 규모, 서비스 정책, 물리적 완결성 등의 측면에서 유연한 선택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포스트는 아카이브 특유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DVD Longevity

창작과 비평

그러면 10년 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10년 전에 한국 출판권력들이 그걸 은폐하려면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었다. 그것을 이슈화할 수 있는 신문이 몇 개 되지 않았고, 또 문학기자들과의 면식을 통해 알음알음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지금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각종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와 카페, 거기에 한번 문제가 터지면 인터넷에 수십 개의 새로운 기사가 경쟁하듯 올라온다. 표절에 시효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언제든 이슈화 될 때마다 현재성을 갖는다

이순원, 한국문단, 표절이 부끄러운 줄 알라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과 창작과 비평(창비)의 ‘찜찜한’ 대응을 문학적으로 해석할 능력은 없다. 그것은 문학계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영화와 음악이 그런 것처럼 그들 자신의 아카이브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오늘 나온 소설과 100년 전의 소설을 문학 아카이브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

창작과 비평은 넓게 보면 민주화운동과도 관련이 있다.
한 때 창비는 출판사의 등록을 취소당했고, 이에 문인들이 반발했던 기록을 사료관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창비를 아꼈고 지금도 그렇다.
창간호부터 도입한 가로쓰기와 한자의 괄호 처리, 사회역사 비평문의 게재, 외국 문학이론의 번역 소개, 문학 뿐 아니라 다양한 인문과학서와 사회과학서 서평 소개 등은 기존의 문예지와 창비를 구별했던 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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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의 사료는 당시 창비가 한국 문학계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1. 창작과 비평사의 등록 취소를 즉각 취소하라
등록번호 526153
+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526153

2.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항의 농성을 마치면서
등록번호 862693
+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862693

아래는 <창작과 비평사의 등록 취소를 즉각 취소하라> 사료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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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2월 9일자로 “창작과 비평사”의 등록을 취소한 당국의 조치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표지, 목차, 머리말, ***란에 부정기 간행물임을 명시한 책자를 정기간행물로 몰아 출판기관을 폐쇄시키는 치졸과 억지와 파렴치함은 삼척동자도 놀랄 지경이다.

(…)

이에 우리는 현정권의 문화탄압이 국민대중의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창발성에 기초라는 참다운 민족문화의 후진화를 넘어 말살을 가져옴으로써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반민주적, 반민족적 작태임을 규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창작과 비평사에 대한 등록취소 조치를 즉각 취소하라!
1. 모든 문화탄압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
1. 언론 기본법을 철폐하라!

1985년 12월 10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학은 아무리 세속화하였다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주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기능을 제일의 기능으로 삼는다.”(경향신문_황현산_표절에 관하여)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작과 비평은 1966년 창간했고 내년은 창간 5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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