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자체

그(폴 세잔)가 종종 절망에 가까운 고심을 했으며 화폭에 정신없이 매달려 결코 실험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울 게 없다.

[…]

미술가들이 그토록 신경을 쓰는 균형과 조화는 기계의 균형과는 다르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며, 아무도 어떻게 또는 왜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세잔  미술의 비밀에 관해서는 많은 글들이 씌어졌다. 그가 무엇을 원했으며 무엇을 이루었나에 대해 갖가지 종류의 설명들이 제시되었지만, 그 설명들은 충분한 것이 못 되며 때로는 자가 당착으로 들린다. 비평가들의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를 짜증나게 할지라도 작품 자체는 항상 우리를 납득시켜주기 마련이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p. 416

<한겨레> 토요판 “윤상이니까 잠시 멈춰서서 음미해도 좋다“와 <서양미술사>의 ’19세기 후반’ 챕터를 비슷한 시기에 읽은 건 행운이다. 윤상의 “기념사진”, “새벽”을 다시 들어보고 내친 김에 레인보우 블랙의 “차차”까지 들어본다.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를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나머지를 기꺼이 희생시키는 것,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Ello- You are not a product

언젠가부터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바꿔서,
내 친구, 나의 팔로잉 페이지의 글(들) 마저 하나의 스트림으로 주욱- 읽기 어렵게 만 들었다. (내가 검색한 키워드의)스폰서 광고가 붙고, 단지 like와 comment가 많다는 이유로 내가 원하지 않는 ‘인기있는’ 포스트를 노출시킨다.

기업은 fb에 돈을 내고 fb은 그런 광고를 내 친구들의 포스트 사이사이에 넣는다. 지난달 발표한 이들의 2014년 3분기 매출은 32억 달러였고, 광고 매출이 29억 달러, 그 중 모바일 광고 매출은 전체 광고 수익의 66%.
이들은 홈페이지의 시대를 끝냈다지만(How Facebook Could End Up Controlling Everything You Watch and Read Online) 그것이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우리의 라이크와 코멘트가 어딘가에서 광고주들에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다. F8컨퍼런스에서 맨발에 아디다스 삼선 ‘쓰레빠’를 신고, 회색 후드티를 입은 주커버그가 소셜그래프가 어쩌고 말을 해도, fb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Mark Zuckerberg’s Letter to Investors: ‘The Hacker Way’)에서 ‘더 열린 세상과 더 촘촘한 연결이라는 사회적 사명’을 말해도,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본사 거리를 ‘해커웨이’라고 이름 붙여도, fb은 점점 광고판이 되어 간다. 비록 지금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한편, 연결의 더 나은 길이 있다고 믿는다는 Ello의 매니페스토는 이렇게 시작한다.

Your social network is owned by advertisers. Every post you share, every friend you make and every link you follow is tracked, recorded and converted into data. Advertisers buy your data so they can show you more ads. You are the product that’s bought and sold.
We believe there is a better way. We believe in audacity. We believe in beauty, simplicity and transparency. We believe that the people who make things and the people who use them should be in partnership.
We believe a social network can be a tool for empowerment. Not a tool to deceive, coerce and manipulate — but a place to connect, create and celebrate life.

You are not a product.

당신의 소셜 네트워크는 광고로 가득차 있고, 글과 친구, 링크 모든 게 다 추적-기록되어 데이터로 바뀌어 광고업자들의 손에 넘어가서 당신 자체가 상품이 된다

페이스북이 거대한 폐쇄적 웹-광고판으로 변하는 동안 “더 나은 길이 있다고 믿는” 이들 또한 새로 태어난다.

나의 Ello

아이팟 클래식, 끝.

2014-03-26 14.21.20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에 말을 거는 재생목록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팟을 들여다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 보는 일이었다. 그 사람의 음악에서 그가 누구인지 보았다. 그가 세련된 사람인지 거친 사람인지(sophosticated or rough)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 순간의 재생목록도, 사랑에서 빠져나온 순간의 재생목록도 볼 수 있었다. 무척 고지식한 사람의 작은 흰색 상자 안에 가장 상스럽고 추잡한 힙합(the filthiest, nastiest hip hop)이 들어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내면적인 삶을 예전보다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내가 듣는 음악으로 내가 여전히 규정되던 때가 그립다. 나의 음악은 여전히 나의 음악이다. 나는 전복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던 젊은 시절이 그립다. 훔친 노래를 주머니에 담고, 흰색 케이블이 목에 똬리를 튼 그 시절. 이런 것을 위한 앱은 결코 없을 것이다.

죽음과 아이팟에 대해: 진혼곡

On Death and iPods: A Requiem

2014년 9월, Apple은 공식적으로 아이팟 클래식 판매를 (조용히) 중단했다. 이미 뮤직App이 MP3 player의 지위를 위협한지 오래. 이제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모바일 웹서핑을 하고 메신저와 페이스북도 할 수 있게 됐다. 뭔가 많이 더해진 것 같고, 전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외려 너무 많아서 조용히 음악에 몰입하는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양미술사

2014-09-06 17.49.28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문고판으로 나온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동네 책방에 주문했고 구입해서 읽고 있다. 일단, 문고판이라는게 정말 매력적이다. 책 자체가 워낙에 두꺼운데다 도판이 절반이라 본문에는 성경처럼 얇은 종이를 사용했는데 이게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양장본이나 반양장본에 아주 좋은 종이를 사용하는 책은 불필요하게 무겁고 거창하다. 그냥 표지에는 본문보다 조금 두꺼운 종이를 쓰고, 본문은 갱지 비슷한 얇고 가벼운 종이를 사용하는 페이퍼백이 좋다. 한국 교육체계에선 미술사 뿐만 아니라 역사 일반이 지루한 암기 과목처럼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미술사가 이렇게도 흥미진진한 도전과 혁신의 역사일 줄이야. 곰브리치는 미술과 역사를 엮고 친절한 해석과 설명을 붙여 기원전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역사를 정리했다.

[…] 그들은 너무도 분명히 좋아하는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해주는 듯한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경우 무식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어쩐지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부르는 속물이 되고 만다. p. 34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p. 43

[…] 물론 이집트의 방식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안전했으며 그리스 미술가들의 실험은 실패할 때가 많았다. […]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당황하거나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출발한 것이다. p. 66

미술가의 수단이나 그의 기술적인 방법은 발전할 수 있으나 미술 그 자체는 과학이 발전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발전한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한 방향으로의 새로운 발견은 다른 방향에서의 새로운 어려움을 낳는다. p. 194 ~ 195

+ 1989년에 나온 15판 서문 중 일부,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습관을 상실했고, 특히 학생들은 어떤 책이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즐거움을 얻는 참을성을 잃어 가고 있다고 비관론자들은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요즘 애들 책 안읽는다’는 진단은 똑같은 듯.

10년 뒤에도

아카이빙 작업 자체는 지루한 작업이에요. 아카이브를 설명할 때 자주 드는 비유가 있어요. 한 사회에 물질적인 인프라가 고속도로나 상하수도, 전력망이라면 정신적 인프라는 역사나 기록학이라고요. 빛을 발하는 일은 아니지만 없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루하고 어떤 이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는 일을 10년 동안 계속 해온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봅니다.

“e하루 땀땀이 기록 10년, 자동 수집 유혹 참았다” 

언젠가, “10년 뒤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냐?” 는 물음에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던 방대욱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 역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곳이 여기든, 아니면 저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