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 대한 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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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은 1978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철폐하라”는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징역 2년에 처해진 바 있다. 35년이 지나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그의 소감이다. 

나 말고도 긴급조치로 감옥에 갔던 수백명이 이번 재심으로 무죄선고를 받았는데 언론에서 내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그들에게 미안했다. 나는 스스로 ‘2선 지식인’이라 생각한다. 우리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친구들 중에 그 일로 삶이 망가진 채 복원이 안 된 이들이 많은데 나는 학계로 와서 편한 길을 걸으면서 지식인 중에 조금 사회참여적이다 하는 정도인데…

어떤 민주화운동 세대들은 역사를 알려달라고, 그 역사속에서 느꼈던 개인의 경험을 말해달라고 하면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들에겐 조희연이 말하는 ‘나 자신에 대한 구토’가 없다. 이 말은 얼핏 과장된 수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과장은 지식인의 습관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이런 말이라도 뱉을 수 있는 선배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흔하지 않으니까. 과거의 경험을 미화하지 않고, 오늘의 현실에 스스로에게도 아픈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흔하진 않다. 

…이런 현실에 대항하는 새로운 주체들이 나올 거라고 믿는다. 과거의 민족운동과 계급운동은 본질적으로 금욕적이고 지사적인, 대의를 위해 자기억압적인 운동이었다. 반대로 요즘의 새로운 운동은 유럽의 68혁명처럼 자기 욕망의 해방운동이고 자기표출적, 쾌락적이다. 자신들의 문제와 욕구를 가지고 저항하는 거다. 어떻게 세대를 넘어서 이런 저항의 정신을 전승할 것이냐가 고민이다. 과거와 형식은 다르지만 세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한겨레, 2013. 8. 24(토), 이진순의 열림: 조희연 성공회대 NGO대학원장 “열혈촛불 지식인의 힘은 ‘나 자신에 대한 구토'”

책 정리

책 정리

부모님 집에 있던 책 몇 박스를 정리했다.
저런 것도 읽었나 싶을 정도로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군 입대 전까지는 지식의 허영에 빠져있었다.
책 속의 세계는 무결했고, 그래서 종종 선배들에게 물었던 것 같다.

“아니요, 선배.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던데요”
“선배, 근데 루카치가 역사와 계급의식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선배들은 “임마, 그런 책 읽지 말고 실천을 해. 농활이나 가자”로 응수했다.
그리고 몇몇 선배들은 ‘참봄’이나 ‘어바웃’을 권하기도 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은 그저 재활용 쓰레기다.
계급의식, 맑스, 통일, 분단 등의 말도 지금의 내겐 아마 그럴 것이다.
그걸 삶에서 실천하는 일은 “너 아직도 그 일하니? 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라는 말을 듣는 낯선 소수의 일이라 생각하는지도.

요즘 사무실에선 업무와 성과급 등 불평등한 제도 개선 문제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간다.
상식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치자는데, 난데없이 “요즘 젊은 것들은 희생과 헌신이 부족해”라거나, 괜히 분란 일으키지 말아라,고 (어줍잖게)충고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는 그 눈빛 뒤에는 아마도.
청년 실업이 심각한 세상이야. 니네 나가도 뽑을 애들 많아…그런 생각도 있겠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건너온 선배들이 그 ‘고난’에 대한 보상과 반대급부를 다른 세대를 참신한 방식으로 ‘억압’하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을테니.

그러니 고작 책을 읽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을 것. 외려 책으로만 세상을 읽고 그들 자신이 변하는 일이 훨씬 많다는 한 선배의 말이 맞을지도.

지난 신문

지난 신문

신문newspaper, 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뉴스가 매일 새로운 자극과 충격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외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기사는 주로 시간과는 그닥 상관없는 기획이나 인터뷰, 서평 등이다. 토요일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많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사무실 우편함에 쌓여 있는,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토요일 신문을 챙겨 스크랩을 시작한다. 칼럼은 노트에 풀로 붙이고, 전면 기사는 한 면을 통째로 잘라서 세 번 접어 가방에 넣어둔다. 퇴근 길 2호선 지하철에는 세 번이 딱 좋다. 다음 날 아침에 식탁에서 다른 기사를 읽고 밑줄을 치고 오리기도 한다.

빠르고 정확하고 검색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과 아이폰으로 충분하다. 발견과 영감inspiration은 한달전 신문, 만년필과 노트에 더 많다.

+ 팁: 오린 칼럼은 노트의 페이지 순서를 따르지 않고, 무작위로 페이지를 펼쳐 붙인다. 발견은 원래 그런거니까.

여행이란

여행이란

여행이란 주어진 보상 그 자체이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그게 끝일 뿐이다.
랜디 코미사, 승려와 수수께끼 중 “The Road”(epilogue)

교토에 다녀온지 한 달. 몇 장의 사진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 때, 거기에 서서 셔터를 눌렀던 느낌만이 남아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녀온 여행에서 남는 것은 음식, 풍경, 쇼핑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거기에 다녀왔다는 것, 오로지 그것 하나.

교토, 텐류지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을 때, 그 순간은 모두 일회적이고 고유하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시간이 그 일회성과 고유성을 보장한다. 심지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찍어내는 스냅샷 역시 그들 각자에게는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것이다. 이때 정말 놀라운 것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 ‘시간을 붙잡았다’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을 통해 매번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흐른다는 점이 새로이 증명된다는 데 있다. (빔 벤더스, 한번은)
2013 겨울 Kyoto

Magnolia, Wise Up(Aimee Mann)

남자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남자의 돈을 보고 결혼한 그녀는 그제서야 후회하고,
그 남자가 버렸던 아들은 뒤늦게 자신을 찾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또 한남자 역시 암 판정을 받는데,
그에겐 자신에게 성폭행당한 후 마약과 매춘에 빠져 사는 딸이 있고,
마음씨 좋은 경찰관은 그녀를 사랑하고.
어린이 퀴즈왕은 무력한 실업자가 되어 개구리비를 맞고.

폴 토머스 앤더슨, 매그놀리아, 1999

“알기전까지는 고통은 계속될거야”

열정이란, 저항할 수조차 없…

열정이란, 저항할 수조차 없이 어떤 것으로 당신 자신을 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반면 의지란, 책임감 또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일에 의해 떠밀려가는 것이다. 만약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조금이나마 자기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어떤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는 욕망은 열정이 아니며, 일정 수준의 몫이나 보너스, 또는 회사를 매각하여 현금을 벌고 싶다는 욕심도 열정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따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열정이 아니다. 그것은 의지에 가깝다.

랜디 코미사, <승려와 수수께끼> p.121

오픈 아카이브 2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마종하, 딸을 위한 시

– 학자나 연구자들이 먼저 …

학자나 연구자들이 먼저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거나 현상을 분석해준 과거와 달리 이제는 변화가 먼저, 설명은 나중이다.

김류미의 탐나는 책읽기, “파괴하거나 비킬 준비를 해야 한다” <경향신문>, 2014. 1. 4

학교는 현장보다 급진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카이브쪽에서는 학교가 현장을 뒤늦게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 같다. 솔직히, 학생들이 논문을 쓰겠다고 찾아와 이 기관의 현황을 물어보고,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자신이 그것을 논문으로 쓰려고 한다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답답해진다. 그 의도가 현장의 나보다 한 발 더 앞선 결과를 이끌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산이나 인력 등의 현실적인 제약이 아니라, 문제의식이 의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현황 분석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논문을 쓴다면 현장 실무자들의 도움없이는 완성할 수 없다. 기관 현실에 대해 학생들은 실무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차라리 (당장은)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와 방법론을 제시한다면 설득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나중에 사업을 준비할 때 근거로라도 가져다 쓸 수 있겠는데.

올 해에 아카이브로 찾아오는 학생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솔직히 해 볼 생각.

가장 어려울 때를 견디지 못…

가장 어려울 때를 견디지 못한다면, 믿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House of Cards는 정치 드라마답게 곳곳에서 잠언류의 인상깊은 대사를 보여준다. 

아카이브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전 부서의 일을 해야만했고, 아카이브의 일은 연초의 계획대로 진행됐기에.

2013년엔 정신없이 바쁘기만한 시간을 견뎌야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