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kespeare and company

Shakespeare and company

오래된 책방엔 특유의 향과 빛이 있다. 낡아서 조도가 약해진 백열전구가 그랬고, 누렇게 변해가는 책의 페이지 사이에서 나는 냄새가 그랬다. 서가에 코를 대고 맡아보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페인트 틈으로 먼지 냄새도 났던 것 같다.

이제 막 ‘시공’을 마친 산뜻한 서점에서는 보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발견’했다. 아, 맞다. 이게 서점 냄새였지…

2011. 5 honeymoon @paris, shakespeare and company

제주, 버스정류장

제주, 버스정류장

파리나 베네치아에선 그 뙤약볕을 견디며 하루 종일 걸어다녀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독 제주에선 렌트카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말하곤 한다. 마침(!) 난 운전면허가(조차) 없고, 아내는 장롱면허라 우리는 버스 여행을 과감히 선택.

‘한라산에서 공을 차면 제주 바다에 빠진다고 생각하’는 ‘육지 촌놈’도 있다고 택시 기사 아저씨가 말해주셨는데 아마 내가 그랬을 것.

우리는 비행기 티켓과 게스트하우스 예약 밖에 하지 않았고, 휴가의 모든 일정을 랜덤으로 가자고 합의했다. 휴가는 빼곡한 일상의 스케줄을 던져버리고 ‘마음껏 시간을 탕진’하는 일인데, 탕진엔 계획이 있을리 없고 찍어야 하는 제주의 스팟 따위도 없었다.

1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는 버스는 학생들의 통학버스였고, 할망들에겐 옆동네 할망을 만나는 곳이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내릴려면 “내릴꺼우다”라고 말을 좀 하던지 벨을 누르라고 할망들에게 유쾌하게 야단쳤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대신 아저씨의 호통에 모두들 깔깔대며 웃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할망의 바짓가랑이를 타고 올라온 사마귀를 “바쁜데 왜 너까지 타고 그러냐”며 떼어내 창밖으로 날려 보냈고, 그게 신기하고 재밌는 우리는 사진까지 찍어대며 웃었다.

할망들 멀미하지 말라고 천천히 달리는 버스는 자주 정류장에 서서 사람들이 타고 내렸고, 렌트카 드라이빙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였다. 해는 천천히 져서 우리는 사위가 어두워지며 날이 지는 풍경까지 챙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사는 게 이런 거구나.

iPhone 4S, Fotor

동네 물가의 아이들

동네 물가의 아이들

제주엔 ‘육지 사람들’이 해수욕장이라고 부르는 것 말고도 동네마다 이런 물가가 꽤 있었다.
먼저 물 속으로 뛰어든 아이가 망설이고 있는 친구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이거 아주 재밌다고 말했다.
그 또래 서울 아이들이 욕 하면서 노는 것과 달리 아이들의 말은 순했고, 부러워서 “재밌냐”고 물었더니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특유의 제주 억양을 섞어 “아주 재밌다”고 했다.

iPhone 5, Facebook Camera

미디어의 이해

미디어의 이해

국가정보원의 NLL기록 공개와 관련해서 학계, 업계는 여러가지 대응을 했다.
2013년 7월 11일자 한겨레에는 “국정원의 대통령기록물 무단공개 및 은닉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신문광고가 실렸다.
여전히 신문광고가 가장 힘이 쎄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에였을까.
당장은 판단을 좀 미루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꼭 다뤄봐야할 문제.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_서울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_서울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이라느니 하는 말들도 자취를 감춰버린지 꽤 오래다. 이렇게 다 파헤쳐놓고, 낡고 오래된 것들을 다 무너뜨리고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간혹 건축 현장 임시 외벽의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_서울”을 보면 민망함을 넘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서울시는 서울을 디자인하느라고 바쁘다. 그 디자인이 기억의 땅을 백지로 만들고 통속적인 그림을 그려넣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황현산, , p.60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기다렸던 선생의 책이 도착했다.

늦게 회의가 끝나 집에 와서 대충 씻고 일단 펼친다. 사은품으로 받은 노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선생의 글을 김훈의 에세이만큼 좋아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 <한겨레>에 연재된 선생의 글을 읽으며 <말과 시간의 깊이> 다음에 나올 책을 기다렸다. 프랑스 말을 한국말로 옮긴 책과 비평집은 나왔는데 내심 출간을 기대했던 산문집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신문에서 오린 선생의 글을 여러번 읽고 가끔 베꼈다.

산문집을 기다린 이유는 산문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선생의 비평이 나같은 문외한에겐 어려웠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나 연구자의 글을 읽고 잘 이해가 안되면 죄스러워진다. 그건 김영민을 읽을 때 드는 기분과 같다.

어쨌든 나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이 책에 열심히 밑줄을 치며 읽고 있다. 자기계발서도 아닌 책에 무슨 밑줄이냐고 묻지만, 나는 이런 문장에 밑줄을 친다.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괴물이었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전두환의 시대가 혹독했다 하나 사람들은 한데 묶는 의기가 벌써 솟아오르고 있었다. 유신시대의 젊은이들은 자기 안의 무력한 분노 때문에 더욱 불행했다”
p.12 과거도 착취당한다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p.18 상상력 또는 비겁함

아껴서 한번 읽고, 7월 제주에서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는 ‘순정한’ 존경을 바쳐 이 책의 대부분을 대학 노트에 베껴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다. 혼자만 읽고 싶다. 그게 내가 선생의 책에 바치는 최고의 존경이다.

친구의 손

Photo 13_Fotor

어릴 적엔 친구들과 늘 손을 잡고 다녔다. 어른이 되어 이젠 손을 잡는다는 게 서로 겸연쩍어 버렸고, 큰 위로가 필요할 때나 내밀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이 잡은 저 손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뭔가 간질간질한게 좋다.

2013. 6. 28
contax T3, Fujifilm c200

iPod Classic

2013-06-25-21-34-03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여러 가지의 복잡하게 숨겨져 있는 기능은 필요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기능이 아니라 삶의 패턴에 따라 몇 가지의 기능만을 사용할 뿐이다. iTunes라는 플랫폼의 힘이 컸겠지만 iPod은 그래서 iriver와 yepp을 이겼다. 음악을 사랑하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와 마케터와 CEO가, 오로지 음악을 듣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는 것. 그게 단순하고 상식적인 성공의 이유.

iMac이 6년간 열심히 일하다 얼마전 수명을 다했고, iTunes 라이브러리의 음악을 재생할 방법을 찾다가 중고 아이팟 클래식을 다시 들여 제플린에 물렸다. 제플린의 Airplay가 무색하지만 음악에만 충실하다. 다른 건 없다.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