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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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venezia

언젠가 불문학자인 김화영 선생님이 사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오는 ‘나’만 바뀌어 있다는 것, 내가 늙어간다는 것, 그런 달콤한 멜랑콜리에 젖어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시 가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조라는 뜻일 것이다.

첫번째엔 당일로 떠나야 했고 두번째엔 아름다운 구도심에서 벗어난 주택가의 작은 호텔에 묵었고 이번에는 옛 다리와 네타어 강이 내려다보이는 좋은 위치의 호텔에서 나흘을 묵었다. 첫번째엔 캐논 자동카메라를 들고 왔고, 두번째엔 니콘 FM2를, 세번째엔 콘탁스 G1과 라이카 R8, 소니노트북과 삼각대를 들고 왔다. 이제 더 이상 차가운 벤치에 앉아 딱딱해진 바게트를 뜯어먹지 않고 제법 괜찮은 식당에서 웨이터가 가져다주는 음식에 맥주를 곁들여 마실 수가 있게 되었다.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려면 이래서 여행을 떠나야 하고 그것도 예전에 가봤던 곳으로 가야 한다. <여행자, 김영하>

리더십 취향

민주주의는 지루하고 비효율적이다.

효율지향의 군주제가 차라리 나을 때가 많다.

이건 취향이다.

중요한 건 봉건주의와 효율적 철학 군주를 헷갈리지 않는 일이다.

산만한 자들을 위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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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록부에 ‘주의가 산만하다’는 선생님의 지적을 한번도 받은 적은 없지만, 스스로는 늘 알고 있었다. 나는 ‘산만’했다. 매우. 모범생의 외피로 위장했지만 ‘딴 짓’을 서슴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토바이, 담배, 술, 만화책 따위.

김중혁의 산문 <뭐라도 되겠지>는 조금 읽다가 그만두고 책장에 처박아 놓았었는데 1년만에 다시 꺼내어 읽었다. ‘주의 산만’에 대한 반가운 구절을 발견하고는 이틀만에 다 읽었다.

“일본의 동화작가 고미 타로의 책 <어른들(은, 이, 의)문제야>에는 나처럼 산만한 사람들에 대한 글이 나온다. “저는 마음이란 산란해지기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란해지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 글자의 생긴 모양이 시선을 모읍니다. 권權이나 군軍같은 글자는 획들이 모두 확실하게 붙어 있지만 심心은 각각 떨어져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산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깜짝 놀라고 두근거리고 용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몇 십년 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썼던 누명을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산만해도 괜찮다고, 산만한 게 나쁜 건 아니라고, 고미 타로가 나를 위로해주었다”(156)

작가 자신 만큼 산만한 한 예술가를 만나 목표가 뭐냐고, 묻고는 자신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후회한다.

“예술에 목표 같은 건 없다. 집중을 요구하는 권權이나 군軍에는 뚜렷한 목표가 있겠지만, 마음이나 예술에는 목표가 없다. 마음을 기록하는 예술은, 그래서 산만한 자들의 몫이다”(157)

마침 즐겨 읽는 블로그에서도 ‘산만함’과 관련한 ‘응원’을 읽었다.

혁신을 낳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을 응원하자

“모범생을 키우는 일본의 교육이 창의적인 인재를 말살하고 있다. 권위를 부정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면서 가설을 생각해 나가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렇게 Creative를 Unlock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이 이토, MIT미디어랩)

많은 사람들이 산만함, 이라는 ‘평가’때문에 고민하지만, 그건 그저 다른 기능일 뿐.

gondolier

2013. venezia

후유증이 좀 있었다. 그건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몇 주간은 좀처럼 쉽게 다스려지지 않았다. 베네치아의 오래된 수상가옥 사이로 흐르는 물위에서, 곤돌라의 노를 저으며 노래를 부르는 곤돌리어의 삶에도 하루치의 노동이 있을거란 걸 알지만.
집으로 돌아와 전경린의 나비 한 구절을 다시 읽었다.
…스무살 땐 누구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식대로 살기 위해 두리번 거리고 검은색 트렁크를 들고 아주 멀리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생이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른 살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먼 곳에서도 같은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서른 살에는 다만 자신이 아직 자신이 아니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Canon 550D+Sigma 30.4

버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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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Firenze

아차, 싶었다.
DSLR이 아니라 필름이 필요한 도시였다.

돌아보니, 떠난 목적은 오로지 떠나기 위함 그것밖엔 없었다. 고대의 유적, 유명한 식당과 럭셔리 매장을 보기 위해 온 게 아니었으니.

CDG에서 다섯 시간을 환승대기했는데, 일부러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유행이 다 지난 10년 전 음악을 듣고, 김승옥의 1960년대 ‘신식’ 소설을 읽고, 만년필과 노트를 꺼내어, 조금씩 버리는 시간은 비즈니스 출장과 연수, 쇼핑과 신혼여행 등 목적을 가진 다른 여행자들 속에서 홀로 값졌다.

리프레시와 재충전이 아니다.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가끔은 오로지 버리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