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와 쉬핑

아이디어만을 두고 말하자면 누구든 다빈치의 노트북 한 권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를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드는 것. 과학의 세계에서 공로credit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설득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그 아이디어 내가 낸 건데”는 게으름의 다른 말일지도. “아이디어는 정적인 허상이다. 실행은 동적인 실체이자 프로세스이며 창업가 정신의 전부”이다. 호모 사피엔스 이후 우리는 누구나 1,600cc의 뇌로 생각한다.

1. <미생> 114수(201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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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쉬핑의 컬쳐(김창원 블로그 Memories Reloaded)

“세상은 당신이 어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얼마나 착실한 계획을 세우느냐에 따라서 당신을 평가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도 그걸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당신이 아주 조그마한 거라도 “하면”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Shipping의 컬쳐

3. IDEO의 CEO, 팀 브라운, 손으로 생각하기(thinking with your hands)

“아이디어가 있을 때 망설이지 말고 프로토타입prototype부터 손으로 만들라”

“사람의 욕망을 디자인하라”…애플도 한 수 배운 ‘디자인 업계의 맥킨지’

황현산

‘국어’라는 말은 불편했다, 오래 전부터. 그래서 일부러 ‘한국어’라고 꼭 고쳐 말하고 썼다. 근거를 잘 몰랐지만 불편한 건 불편했다. 90년대 후반에 복거일을, 2000년대 초반에 고종석을 읽고는 그 불편에 정당한 근거를 붙였는데 지금껏 그 버릇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인상이 꽤 강했던 모양이다.

한편 ‘모국어’라는 말은 편안했다. ‘국어’에 ‘어미 모’를 붙인 그 말은 ‘국’어라는 강압없이 아늑했는데, 엄마, 라고 소리내어 읽을 때 입술을 닫고 목을 울리는 그 느낌 때문이라 생각했다.

문학이라곤 고작 몇 권의 소설과 비평집을 읽어본 게 전부인 문외한인데 황현산의 <말과 시간의 깊이> 서문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 같은 문외한들은 아름다운 모국어로 쓰여진 글을 읽으며 그것을 해석하거나 첨언할 수는 없고 다만 베껴쓴다. 김훈과 고종석을 대학 노트에 베끼면서 혼자서 ‘순정한’ 존경을 바치는 수밖에. 오랜만에 황현산의 <말과 시간의 깊이> 서문을 옮겨적는 시간은 홀로 귀하다.

2013-03-30 18.02.32

2011년 4월 1일자 <한겨레>에 실렸던 황현산의 ‘고향의 봄’ 앞에서, 라는 글도 거듭 읽는 아름다운 글 중 하나이다.

2013년 6월 30일 추가: 선생의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가 출간되었다.

김윤식이 본 황현산, “현장비평의 자격을 갖춘 사람-찬(讚) 말라르메의 제자 황현산

직설의 위계

총무국장이 조직의 절차와 프로세스,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게 서로 편하다는 것인데, 여기엔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어쩌면 눈 감아버리고 싶은 것일지도.

잘라 말하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에선 갈등의 불씨를 키우기만 한다.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생각해보자.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고 하면 누가 더 말을 많이 할까. 위계에서 높은 사람일까, 낮은 사람일까. 직설적으로 말하자고 하지 않아도 임원과 관리직들은 늘 많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그들이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는게 문제인거지.

수직 위계에서 그런 주장은 애초의 ‘게으른 의도’와는 상관없이 임원이나 관리계층의 발언권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수평적 조직에서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의사결정에 드는 비용을 줄여서 조직 운영의 전체 비용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수직적 조직에서는 ‘윗선’이 많은 부분을 양보하지 않는 한 직설의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하다.

직설의 장점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은 당분간 입을 닫아야 한다. 귀만 열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큰 직설의 미덕이다. 잘 듣고 공감하다보면 어느 순간 ‘직원’들이 입을 떼기 시작할거고 조금씩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간에 관리직의 인내가 부족하다면 실패할 수도 있다. 관리직들이 직설이 편하다고 선언해버리는 문제가 아니다.

말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다. 온갖 존칭이 복잡한 한국어라면 더더욱.

+ 직원 36명에 관리부서만 12명. 개별 사업의 수가 80개가 넘는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관리부서는 조직의 모럴moral을 주관해야 한다. 직원의 근무 태도와 계량화된 업무 성과의 수치는 그 다음 문제다. 모럴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은 관리직인 당신들 몫. 설마 모럴을 직역해서 도덕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헤이룽장성의 돼지우리

2012년 초 갑자기 사료관에서 기념사업국으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대학원에서 기록관리를 전공하고 그 이유로 사료관에 입사해서 4년을 일했다. 그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마디의 협의와 면담도 없이 기념사업국으로 왔다. “그 곳의 일도 좋은 경험이 될거다”라는 조언은 듣지 못했다. 아니, 임원의 결정이 이러하다, 라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 3년 짜리 사업을 위해 짰던 전략계획서는 임원진의 말 한마디에 휴지통에 처박혔고, 부서장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눈길을 피했지만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전과 다르지 않았고 술자리에선 여전히 흥겨워했다.

사내 게시판의 인사발령 공지는 건조했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사표를 썼다. 인생에선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라고 혼자 곱씹을 수밖에. 기념사업국에서 1년을 지내며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물었고 역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보면, 임원에게 ‘불손했다’ 는 것이 내 판단이었는데, 그것을 농담처럼 “니 말이 맞다”라고 누군가 확인해줬던 날 줄담배를 피웠다. 전세금 대출 이자를 갚아야해서 사표는 찢어버렸다.

2013년 초 사내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인사발령 시기를 앞두고 내 마음은 이랬다.

오랜만에 열사 추모제 공지 이외의 글을 씁니다.

이 달엔 명절보너스도 있고 연말정산 환급도 있어서 기분이 좋네요.
이 복잡하고도 복잡한 업무를 맡고 계신 총무국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합니다.
3월엔 성과상여금도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 미리부터 행복해집니다.
저는 그 돈으로 맥북 에어 할부를 갚으려고 합니다.

성과상여금에 대해 생각하다 얼마 전에 읽은 글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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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적 보상/벌금의 한계
http://dobiho.com/?p=5533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사람인데,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동기” 라고 하니, 동기라는 것은 참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동기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재미 있어서, 꿈이라서,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먹고 살아야 해서 등등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어떤 한가지 이유가 동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몇개가 섞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그랬다고 합리화 하기도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동기를 잊어 버리고 살기도 한다.
직장을 나가서 일을 하면 돈을 준다. 돈과 같은 것이 요즘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서 보상의 도구가 된 것 같다. 진짜 돈이면 될까?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 아닌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아닐까? 이런 점들이 궁금하다.

직장에서 인사 평가가 되고, 인센티브나 연봉을 결정하는 시기가 오면, 이런게 더 생각이 난다.
나는 돈을 받은 만큼 일했을까? 나는 일한만큼 돈을 받았을까? 아니,나는 일한 만큼 인정을 받았을까?

마이클샌델이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이란 책에 제시한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스위스는 방사능 핵 폐기물을 저장할 장소를 찾으려고 수년간 노력해왔다. 국가가 원자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한가운데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는 지역사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핵 폐기장 후보지 가운데 스위스 중부에 있는 인구 2100명의 볼펜쉬셴이라는 작은 산악마을이 거론되었다.

1993년 핵 폐기장 건립 장소를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직전에 일부 경제학자들이 마을 주민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하여, 만약 스위스의회가 자신들의 마을에 핵 폐기장을 건립하겠다고 결의하는 경우에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투표할지 물었다.

거주지 주변에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근소한 차이로 거주민의 과반수인 51퍼센트가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마을 사람들의 시민적 의무감이 핵 폐기장 유치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누른 것이다. 여기에 경제학자들은 감미료를 제시했다. 의회가 당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핵 폐기장을 건립하겠다고 발의하고 각 주민에게 매년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안건에 찬성하겠는가?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재정적 유인책을 추가하자 핵 폐기장 건립에 찬성하는 비율은 51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절반가량 떨어진 것이다.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이 핵 폐기장 건립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주민의 의지를 실제로 약화시킨 것이다. 보상금 인상 제안도 효과가 없었다.”
처음에 그 거주자들의 51%는 핵폐기물을 받아 들이기로 했는데, 이는 시민의식으로 가지고 감수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금전적인 보상을 한다고 하는 순간, 그 가치가 갑자기 금전으로 환산이 되었고, 오히려 의지를 약화시키게 된 것이다.

즉, 로또 정도의 돈을 지불했으면 모롤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 인사평가로 인한 인센티브나 연봉이 결정되고 나면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닌데, 이런 피드백도 있다
“사실 연봉 크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나는 먹고 살만하다. 나는 내가 일을 잘 했는지 인정 받았는지 알고 싶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전에 성과를 잘 낸 죽도록 일한 직원의 포상을 추천 했는데 안되고 다른 부서의 직원이 되었다. 너무 속상해서 사장님을 찾아갔다.
상 안줘도 좋으니 가서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고생했다” 한마디만 해주세요. 그럼 됩니다라고 했다.
그 사장님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면서 데려가서 밥사주고 좋은 애기를 해주셨다.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그 보상이 반감되는 실험이 있다. (사례가 뭐였는지 잘 생각이 안나서 생각나면 넣을 생각이다)

보상 말고 벌금의 예도 있다. 이스라엘 한 유치원의 사례이다.

한 유치원의 교사들은 방과 후 아이들을 늦게 데려가는 부모들 때문에 종종 퇴근이 늦었다. 그래서 교사들은 아이들을 늦게 데려가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물질적 손해를 면하기 위해 지각하는 학부모가 줄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오히려 벌금을 부과한 이후, 지각하는 학부모가 2배로 늘었다. 지각에 대한 죄책감이 벌금을 내면서 정당화된 것이다.

어쩌면 아직 까지는 있는 미안함,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런 미안함을 돈으로 바꾸면서 “그래 돈 내면 되지” 하면서 정당화 된 것이다.
인지과학이나 조직심리학, 행동경제학, 조직행동론 등에 보면 이런 사례들이 많다.
남에게 인정 받는 것, 미안함, 시민의식, 봉사 등등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는 순간, 사람들은 가치 기준을 바꾸는 것다.
금전적 보상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렇지 않은 가치들에 대한 동기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인류가 언제까지 미안해하고 측은지심을 가지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남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점들이 아직 많다.
물론 돈을 많이 받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는 꼭 돈만이 아니라 이런 점들이 있으니 이런 점들이 삶을 살아가는데나 직장에서도 잘 고려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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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할게요.

사료관에서 맡았던 오픈 아카이브 사업은 원래 3년으로 계획했습니다.
3년짜리 로드맵과 세부 기술을 정리했었습니다. 이걸 정리하는데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엑셀 시트(한글말고 엑셀이요)로도 30장이 넘고, 관련 기술 전망을 스크랩한 파일만도 300개가 넘습니다.
적어도 사료 웹서비스 분야에선 기념사업회 사료관이 한국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겉으로 바뀐 것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비스 인프라와 아키텍쳐를 바꾸는 작업이 만만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3년이 필요했고 빨리 변하는 기술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모니터링했습니다.

기록관리 학계와 업계에서도 우리의 성과를 인정했고 얼마 전 오픈한 노무현 아카이브는 우리와 함께 사업한 경험을 갖고 좀 더 발전시킨 사례입니다.
우리보다 수십배 예산과 인력이 많은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 국사편찬위원회도 우리에게 자문을 구해왔습니다.
이건 예산과 인력의 총량으로 해결되는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이 아니었으니까요.

이 사업을 하면서 월급이 몇 배 오르지도, 늘어난 이용자수와 페이지뷰의 성과가 금전적 효과로 돌아오지도 않았지만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평가는 그것들보다 값진 성과였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이 민간역사기록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는 칭찬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초, 기념사업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사실 많이 헷갈리고 힘들었습니다.
순환 보직은 필요하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은 더 많은 연결을 장려하기도 합니다.
구글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도 그런 정책을 일부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인사 이동엔 Why가 없었습니다.
왜 지금인지, 이번 인사 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혼자 짐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니가 월례회의에서 자꾸 개기니까 그렇지” 라는 말도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은 누가 뒤에서 벽돌로 머리를 내리치기도 한다는 말을 곱씹으며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순환 보직을 인정합니다.
다만 거기에 대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고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저는 사랑합니다.
그 일이 세상에 의미를 남길 때, 주위 사람들이 그 일을 인정해줄 때 사소하게라도 행복하고 그 크기는 늘어난 통장 잔고보다 큽니다.

한 번이라도 임원과 부서장 수준에서 대화의 채널을 열고 솔직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더라면 새로운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훨씬 빨랐을 겁니다.
왜 옮겨왔는지를 혼자 고민하고 여기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를 고민하는 시간은 그냥 흘러갔고 그건 조직 차원에서도 손실이었습니다.
꼭 간담회, 이렇게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근사한 안주가 나오는 술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익숙한 사무실보다는 정동길의 커피맛 좋은 찻집에서 경영진과 직원이 일과 삶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라면 서로의 마음을 쉽게 헤아리고 배려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의중’을 짐작해야 하는 고단한 직장인이 아니라 선배와 후배가 반 발짝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니까요.

“갑작스럽겠지만 니가 기념사업국에서 일을 맡아줘야겠다, 니가 필요하다”라는 말이었다면, 더 짧게는 어깨를 두드리면서 “힘내라”는 한 마디로 충분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스킨십을 좀 낯설어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건 스킨십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조직이 고민하는 ‘최소의 비용’을 투입한 최대의 ‘동기부여’ 즉, 경영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네요.

곧 새로운 직원이 오고 인사에 작은 변화가 생기겠지요.
올 해 인사에선 이런 작은 인풋으로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웃풋을 기대해봅니다.

말이 서툴러서 글로 씁니다.

사업회 임직원 여러분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2013년 3월 5일, 총무국으로 불려 올라가 2013년의 인사이동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게 확정이었다. 임원진에게 사료관 복귀를 어필했던 2분의 면담, 현재 부서장과 사료관장에게 사료관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것까지는 좋았는데 게시판의 글이 문제였다는 말을 함께 들었다. 임원은 인사에 관한 문제를 공론화하길 꺼리는 성격인데 결국 니가 쓴 글이 니 발목을 잡았다는 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들으며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입술을 깨물고 웃으며 동의했다. 동의하는 척 했다. 이들의 정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윤태호의 <미생>은 응씨배 결승 5국에서 만난 녜웨이핑과 조훈현으로 시작한다. 문화대혁명 시절 중국은 바둑을 네 가지 나쁜 유산 중 하나로 겨냥하고 녜웨이핑을 둥베이 지방 헤이룽장성으로 끌고 가 돼지우리 당번을 시켰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그는 다시 돌아온다.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면 그 곳은 내가 바라던 그 곳일까. 돌아가면 2년 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던 문제들이 해결될까.

여기는 헤이룽장성의 돼지우리일까.

상식

상식(common sense)은 세상에서 가장 모순되는 단어의 조합입니다. 세상에서 sense보다 덜 일반적인common것은 없습니다. 다음에 상식 또는 직관(결국은 같은 말)이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잠시 멈추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논쟁할 때 그들이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마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그들은 확실히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식을 ‘내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그게 실제 의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실제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거라고 오해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해 주기는 바라는 대신 말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 감지되지 않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S. 플랫,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 같이 만든거야: why software sucks>, p.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