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 공부의 결과를 갖고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이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 적어둔다. 예비학교 참가자와 나눈 이야기 중 ‘인맥’.

이른바 ‘이 바닥에서의 인맥’ 형성과 활용의 문제인데. 의도야 어쨌든 선의로 이해하지만 독하게 답을 드리면 이렇다. 내 경험이므로 당연히 편견과 오류가 있다.

1. 인맥, 그런 건 없다.

2. 인맥을 만든다는 건 결국 실력을 쌓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예를 들면, 학회에 나간다. 모르는 것을 묻고 여러 분야에서 온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다. 배움을 얻고 자극과 영감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짧은 Q&A로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다시 본다. 관련 자료를 읽고 의문이 풀리지 않아 아까 그 발표자에게 메일을 쓴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연구하고 발표한 주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에게, 정성껏 답을 해준다. 이게 인맥이라면 인맥이다.

협회에서 일을 한다. 선배들이 여럿 있다. ‘업계(학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에겐 누구나 친절하다. 같이 일을 해보고 술도 마셔보고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생겨서 자연스레 물어본다. 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이에겐 물어보는 게 쉽다, 당연하다. 논문 프로포절을 상담하기도 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에 관련된 자료를 묻고 얻는다. ‘어, 이 녀석봐라. 열심이네’. 이게 인맥이라면 인맥이다.

3. J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직’했다. 그는 먼저 제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공공기관 기록연구사가 된 건 아니다. (기록연구사라는 타이틀이 공부와 삶의 궁극적 목적도 아니지 않나!) 학생 때 그는 학교에서 듣는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해서 다른 학교 강의를 청강하고, 학회, 협회, 관련 단체의 일에도 열심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후배들은 그에게 모르는 것을 물었고 선배들은 스터디를 만들면서 빼놓지 않고 그에게 연락했다. 한 회사가 그를 눈여겨봤고 졸업을 앞두고 그는 벌써 일을 시작했다. 이게 인맥이라면 인맥이다.

4. 인맥은 실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을 때 힘이 세진다. 내가 당신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나를 아는 게 인맥이다.

그러니 인맥, 그런 건 없다.

오픈 아카이브 Beta

2011년에 만든 오픈 아카이브엔 아직 Beta딱지가 붙어 있다. 그 땐 인프라와 구조 개선이 가장 시급했다. 예를 들면 엑티브엑스를 모두 걷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남들이 보면 웃을 정도로 사소한 문제겠지만 한국 공공기관 웹사이트의 현실을 알고 있는 이라면 이게 우리에게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Beta를 붙였던 건 이걸 먼저 하고 디자인과 콘텐츠, DB를 나중에 손보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고,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났고, Beta는 아직 붙어 있다. 이걸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고 민망하다. 경영자들은 쉽게 직원들의 근무 태만과 의욕 부족을 지적하고 질책하지만 조직의 진짜 큰 로스loss는 이런 곳에서 발생한다.

2012년에 사료관은 <인물 콘텐츠 ‘인물을 말하다’>(동영상)와 <사료 이야기>(텍스트와 사진의 스토리텔링)를 만들었고 이걸 아카이브에 붙였다. 그런데 아카이브 웹 서비스 계획 전체의 흐름을 챙기지 않아 일관성이 빠졌고 전체적으로 산만해졌다. 이 콘텐츠에서 저 콘텐츠로 가는 흐름이 인지적으로 어색해진 것이다. 사소하게는 매뉴 바 버튼 디자인의 좌우 폭을 조정하지 않았고 Google Chrome에선 네비게이션 디자인이 일부 여전히 깨진다. 구글 커스텀서치 옆의 상세검색은 버튼으로 처리하지도 않았다. 이런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 내 업무 영역을 벗어나 있을 때 난 무력하다. 이것들을 챙겨야 Beta를 떼어낼 수 있다. 구글 인덱스에 쌓인 로그를 분석하고 그것들을 다시 로컬 검색 결과로 가져올 방법을 연구하고 디자인을 손보고 콘텐츠를 묶고 DB 품질을 높일 수 있어야 Beta를 떼어낼 수 있다.

한 명의 개발자와 한 명의 디자이너를 뽑자는 주장이 몇 년째 공전한다. 우리는 웹서비스에서 플랫폼으로 가려는데 경영진은 “아, 그거 홈페이지?”라고 물어오니 난감하다.

이게 한국 공공기관 아카이브 웹서비스의 현실인데, “오픈 아카이브 잘 만들었더라구요” 이런 말 들으면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정말이다.

2013 기록학 예비학교

매뉴스크립트에서 일한 경험을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그런거야 나중에 다 알게 되는 거고, 입문하는 이들에겐 공부와 일에 대한 ‘사소한’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에서의 일반적인 공부 방법과 취직, 현장에서의 경험은 앞으로도 들을 기회가 많을테니 편견과 오류가 있더라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고민했던 건 적어도 ‘나 이렇게 취직했소’류의 취업성공기가 안되도록 하는 것.

시간순에 따른 진행을 위해 Timeline JS로 제작.

Archives Matters

참고로 읽어볼 만한 세 개의 글.

+ 오욱환,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 강유원, 논문 작성 매뉴얼

+ 강유원, 공부하기 배우기 글쓰기

보따리 사랑

2013-02-09 20.22.25

짧은 설 휴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장모님이 김치를 한 보따리주셨다. 스뎅 냄비에 핑크 보자기 패키지는 고향에 다녀오는 사람들만이 손에 쥘 수 있는 것. 고속버스 짐칸에는 이거 말고도 몇 개의 형광색 보따리가 더 있었다. 거기에도 아마 서른을 훌쩍 넘긴 당신의 딸과 아들들을 도시로 돌려보내야 하는 마음이 “밥은 꼭꼭 씹어먹어라. 찻 길 건널 때는 좌우를 꼭 살펴라”는 말처럼 담겨 있을 것이다.
세상은 빨리 변하지만 김치는 시간의 힘으로 익어가고 부모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영원한 건 그것 뿐.

Pitching의 한 가지 방법

Pitching의 한 가지 방법

Pitching의 기본 목적인 설득이라면 도구는 어떤 것을 선택하든 목적에 적합하면 된다.
동영상, keynote, 화이트보드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번엔 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말하는 거라 새로운 도구를 택했다. 물론 이 스프레드시트는 소스.

중요한 건 딱 세 가지. 스토리, 스토리, 스토리.

산천어 축제

겨울이면 화천에선 산천어 축제를 한다. 1백만명이 화천을 찾고, 규모로만 치면 세계4위란다. 키워드는 산천어. 끝. ‘산천어’라는 목표에 집중하면 이걸 위해서 요란하게 미리 부서를 나누고 책임자를 앉힐 필요가 없다. 처음엔 그저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를 중심으로 몇 명이 모여 이 목표를 위해 뭐가 필요한지, 그것을 추진하기 위한 것들을 적고 연결하거나 빼고 정리하면 된다. 그제서야 각 업무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

산천어, 라는 목표가 정해지기 전에 조직을 먼저 꾸려 책임자를 앉히고 “올 해 우리 뭐할까”, 이렇게 접근하면 망한다. 그런데 많이들 이렇게 한다. 생각외로 정말 많이. 조직은 구성되는 순간 자기생존을 위한 논리를 갖는다고 한다. 그 조직을 만들게 한 동기가 아니라 조직 그 자체의 논리.

하드웨어 제조기술, 자체 소프트웨어, 콘텐츠, 배급망, 유통 체계를 갖춘 SONY는 각 부문의 생존을 도모하다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칼럼 소니는 전자제품 회사인가 에서도 지적하듯 Division이라는 말 자체가 불길하다. 부서 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회사는 거의 없다.

2013년 사업설명회의가 방금 끝났다. 세 시간. 사업은 많고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부서장과 임원들은 우리의 ‘산천어’가 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내 부서가 아니라. 우리는 처음엔 그렇게 모이지 않았었나. 

아래 그림처럼 하나의 목표가 있고 그걸 위한 부서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조직이 이 그림을 180도 뒤집은 것처럼 부서 하위로 목표를 수렴시키려 한다. 그러니 당연히 따로 논다.

이미지.

머그 월

머그 월

NHN엔 머그 월mug wall이라고 있다. 종이컵 말고 머그컵을 쓰자는 건데. 심플한 발상, 분명한 목표에 절차와 디자인은 세련됐다. 에너지 절약은 연예인들 나와서 표어 든 사진으로 포스터 만들고, 직원들에게 복사용지 아껴써라, 점심시간엔 소등해라…교육과 훈계를 빙자한 잔소리 한다고 되지 않는다.

마음을 이끌어내고, 환경을 제공하면 된다. 머그 월의 머그가 똑같을 필요도 없다. 집의 씽크대를 열어보면 다들 안쓰는 머그컵 몇 개는 있다. 기념품으로 많이들 나눠주니까. 내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살짝 힌트만 줘도 성인인 우리는 자연스럽게 ‘캠페인’을 실천한다. 디자인은 예쁜 게 아니라 옳은 걸 고르는 것이라는 걸 다시 확인.

+ 유니클로의 히트텍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내복입기 ‘운동’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히트텍 세일할 때 하나씩 들고 계산대에 기꺼이 줄을 섰다. 히트텍은 2012년 한국에서 500만장이 팔렸다.

2월 월례회의에서 문득,

스티븐 존슨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10/10 법칙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실 20세기 전체를 바라보면 가장 중요한 대중적 개발품인 각종 통신수단들은 괴이할 만큼 규칙적으로 동일한 사회적 혁신 속도에 따라 등장했다. 그것을 10/10법칙이라 부르자…새로운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데 10년이 걸리고 그 방식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의미다.

클레이 서키는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Here Comes Everyday>의 집필 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하나의 기술이 혁명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대략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도구가 더 이상 새롭지 않고, 흔치 않던 도구가 모두의 손에 들려,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대단한 변화가 시작된다.

2월 월례회의(회의를 빙자한 고등학교 때 대운동장 조회 같은 것)에서 이사장이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개탄한다. 전철 한 칸에 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들 게임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대신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인데. 석기 시대 동굴벽화에서도 발견된다는 보통 할아버지들의 ‘요즘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원…’ 류의 흔한 핀잔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조직 수장의 생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맞다. 다들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누군 아침부터 애니팡을 할테고, 어제 회식 때문에 놓친 드라마를 보고,  카톡을 하겠지. 그런데 이건 더 이상 그저 폰이 아니다. 컴퓨터인데 전화도 된다는 거지. 메일을 확인하고 그걸 포워딩하고, Reeder를 열어 내가 구독하는 포스트를 읽고 다시 읽어야 할 글을 Pocket에 넣고, 필요하면 Evernote에 담겠지. 동료에게 공유하고 싶으면 바로 메일로 보내고. 어떤 사람은 Facebook을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 받는 정도로 사용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Page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 정리하기도 하지. 나처럼 mobile wordpress로 끄적이기도 하고. 이건 말하자면 끝이 없고 답이 없다.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미국이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리던 당시의 컴퓨터보다 성능이 좋다고 한다. 같은 성능의 컴퓨터로 누군 달로 가는 우주선을 만들기도 하고 누군 애니팡을 하기도 한다. 여기엔 옳고 그름이 없고 다만 달라진 세상만 있을 뿐. 생각하는 방식, 정보를 얻는 방식이 달라졌고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중요한 건 달라진 도구를 갖고 그럼,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폰을 쥐고 무엇을 하는지, 그걸 통해서 어떻게 세상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지, 이런 현상을 ‘민주주의’라는 우리 조직의 가치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요즘 젊은 것들은 으이구 쯔쯔’라고 혼잣말하는 것보다 이롭다.

더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이 꼭, 더 행복한 세상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람들은 외로워서 나로 향하는 메시지에 집중하기 위해 폰을 들여다보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배원인을 분석하는 미디어들은 민주당에 ‘시장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라 주문했다. 한국전쟁 정전 60년, 동북아 정세, 세계의 환경 문제 등은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제발 좀 맡기시고 직원들과 더 이야기하고 ‘사소한’ 것들에 좀 집중하시길.

2월 월례회의에서 문득,

+ 민주주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이엔 별 모순이 없다.

+ 회의시간에 필요한 자료가 있어서 에버노트나 구글독스로 찾으면 딴 짓 하는 줄 알고, 아이폰에 블루투스 키보드 연결해서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떨고 있으면 일하는 줄 안다는 것, 그거 참.